‘원키’를 고수한다는 것

2025-08-28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 부르기 챌린지에 고음 고수들이 쏟아진다. 분수처럼 치솟는 후렴 “업! 업! 업!”의 3옥타브 라(A)를 막힘없이 찍어 올리는 젊은 목소리들.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주인공들이 역경을 음악으로 뚫고 나가는 감정선을 보여주려면, 노래 자체가 어려워야 했다”고 말했다. 고음을 강조한 건 상처와 극복의 서사를 높이로 번역한 선택이었다.

고음 하면 따라오는 대중적인 키워드가 ‘원키’다. 곡이 처음 발표됐을 때의 원래 조성(Key)을 지금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이다. 문득 묻게 된다. 고음 고수 가운데 20~30년 뒤에도 이 노래를 원키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키 낮춘 안정적 가창도 좋지만

몇 초 고음이 세월 뚫을 때 울컥

꼿꼿한 원키 고집이 더 매력적

두 달 전 복면가왕에서 김종서가 시나위의 ‘새가 되어가리’를 60세의 목소리로 38년 전 원키 그대로 불렀다. 재작년 송골매의 배철수 역시 70세에 모든 노래를 원키로 불렀다. 이은미·소찬휘 역시 50대의 나이에 고음의 대명사 곡들인 ‘녹턴’ ‘티어스’의 원키를 고수하고 있다. 10년 전 내한 공연에서 3시간 동안 지치지 않는 목소리로 관객들을 놀라게 한 폴 매카트니는 83세인 지금도 ‘오블라디 오블라다’ 등 한두 곡을 제외한 대부분 곡을 원키로 밀어 올린다. 스티비 원더는 75세인 지금도 어느 라이브 무대에서나 단 한 곡도, 단 반키도 낮추지 않는다.

반면 5년 전 내한공연 때 U2의 보노가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를 두 키나 내려 부르던 순간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30년을 기다렸던 무대에서 김빠진 풍선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레비틴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아는 노래를 반주 없이 부르게 했더니, 40%가 원곡과 정확히 같은 음높이로 시작했고 44%는 1도 음정 이내로 불렀다. 우리 뇌는 멜로디뿐 아니라 정확한 음높이까지 장기 기억에 저장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가수가 키를 내리는 순간, 관객은 미묘한 배신감을 느낀다.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를 원키로 부를 때 객석을 휩쓰는 전율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다. 봉인된 기억이 열리면서 과거의 나와 재회하는 순간이다. 원키는 음악의 키이자, 기억의 열쇠다.

30대부터 성대는 딱딱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근육은 위축되고 폐활량은 떨어진다. 의학은 냉정하다. 하지만 성대를 꾸준히 쓰면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원키 고수’는 의학적 한계에 대한 의지의 반란이다.

“힘들어도 키를 낮추지 않는다”는 원키 고수파들이 후렴에서 흔들려도 끝내 고음을 뚫는 그 몇초의 호흡 속에 관객은 울컥한다. 완벽한 음정 때문이 아니라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 고집스러움이 시간의 중력 앞에 자존심을 꼿꼿이 세우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원키만이 미덕은 아니다. AI 시대, 오토튠은 완벽한 음정을 만들어주고 AI는 죽은 가수의 목소리로도 새 노래를 만든다. 기술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에 굳이 일그러진 고음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지속가능한 완성도로 현역을 유지하는 것이 고음보다 중요할 수 있다. 키를 낮춰 안정되게 전해진 그 오롯한 감정이 관객의 추억을 더 섬세하게 되살릴 수 있다. 라이브는 그날의 컨디션과 변수까지 포함한 ‘오늘의 진실’을 기록한다. 키를 낮추든, 편곡을 바꾸든, 심지어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든, 지금 가능한 힘으로 관객 앞에 서는 일이 먼저다. 어쩌면 진짜 용기는 원키를 포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에 맞는 목소리로, 지금의 감정으로 노래하는 것.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자신을 보여주는 것 말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원키의 남다른 가치가 있어 보인다. 더 매끈한 음정이 관객의 귀에 자주 흐르지만, 가수가 지금의 몸으로 어디까지 밀어 올리는지 가늠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오히려 ‘원키’라는 단어가 다시 힘을 얻는다. 기술로 감출 수 없는 현재의 몸, 그 몸으로 자기가 세운 중심을 끝내 지키려는 약속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타협 없는 완고함. 어떤 자존심 혹은 몸부림. 그 결과로 도달하는 희소성.

결국 이것은 정답과 오답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또한 인생과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다. 어떤 배우는 톰 크루즈처럼 몸으로 ‘원키’를 고수하고, 또 다른 배우는 기술과 팀워크로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성형과 다이어트를 선택하는 배우, 자연스러운 주름으로 관객과 공감하는 배우 모두 자신이 선택한 최선의 길이다. 누군가는 젊은 음역을 최대한 유지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조정과 조율로 지금의 목소리를 더 멀리 보낸다.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무대에 서서,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관객에겐 정답은 없어도 선호의 방향은 있다. 선택하라면 여전히 나는 고음의 원키를 고수하려는 그 꼿꼿함 쪽에 좀 더 끌린다. 비록 일그러질지언정.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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