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은 '위기', 통상은 '기회'…'트럼피즘' 손익 계산 중인 전기차·배터리

2024-11-07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공언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국내 전기차·배터리(2차 전지) 기업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전기차·배터리 시장은 IRA 보조금의 영향을 직접 받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IRA로 국내 업체의 미국 내 배터리 판매량은 26%나 증가했다.

IRA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현실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주민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7일 보고서에서 “종전 IRA 체제를 바꾸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주 연구원은 그 근거로 배터리 투자가 집중되는 미시건·오하이오·네바다 등 지역구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지난 8월 공화당 하원의원 18명이 IRA 폐지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주요 경제 기조가 중국 압박이라는 점도 IRA 완전 폐기가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IRA는 중국 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의 제품이 미국 시장에 들어올 때 장벽을 높이는 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6월 “트럼프의 대(對) 중국 견제 기조상 트럼프 집권 시 무역장벽 강화로 탈중국 공급망 정책이 한 층 더 심화될 것”이라며 “IRA에 담겨 있는 탈중국 공급망 구축 방향성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보조금 축소시 영향은

IRA가 폐기되진 않더라도 보조금은 축소될 것이란 전망은 많다. 그럴 경우 국내 배터리 업체의 타격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IRA에 따른 AMPC(생산세액공제)를 올 3분기에만 LG에너지솔루션은 4660억원, SK온은 608억원을 받았다. 둘 다 AMPC를 제외하면 적자였다. 스텔란티스와 북미 JV(합작사)가 오는 12월 가동하는 삼성SDI도 내년 본격적으로 AMPC를 받을 예정이었다. 다만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는 “AMPC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소비자한테 가는 택스 크레딧(세액공제)은 변동이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세액공제와 달리 AMPC는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IRA 보조금이 줄더라도 국내 전기차 생산 기업의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 그런데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 전기차 중 IRA 보조금을 받는 차량은 현재 없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은 테슬라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시대에 전기차 전환은 속도조절을 할 가능성이 있어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일부 라인에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 차량을 생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트럼프의 중국 견제시 ESS 반사 이익

트럼프 시대의 보조금 축소가 꼭 부정적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트럼프 당선인의 대(對) 중국 견제 등 통상 정책은 한국 기업에는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달 내놓은 ‘미국 통상정책의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 이후 배터리 분야에서는 유의미하게 한국의 대미 수출이 증가했다. 연구원은 “한국의 대미 수출이 (관세 인상) 대략 18개월 후부터 증가했으며, 효과가 매우 장기적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배터리 업계에서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대 중국 견제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특히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IRA상 해외우려국가(FEoC)로 지정하고, 중국 전기차용 배터리 등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국 배터리를 차단했다. 그러나 ESS 등 비전기차용 배터리에 적용은 2026년까지 유예했다.

이틈에 중국 업체들은 저렴한 LFP(리튬인산철)을 무기로 장벽이 없는 미국 ESS 시장을 침투해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ESS 배터리 출하 실적은 CATL과 BYD가 1, 2위로 전체의 52%를 차지했다. EVE, REPT, HTHIUM 등 중국 업체들도 전년 대비 100% 이상씩 성장하며 3~5위를 차지했다. 미국 ESS 시장이 중국에도 열려 있던 덕이다. 반면 한국 업체 점유율은 2022년 14%에서 지난해 9%로 하락했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의 기조는 중국과 디커플링이기 때문에 중국 ESS에 대해 유예했던 FEoC 지정이나 관세 인상 등의 조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ESS가 미국 시장에서 차단되면 그 시장은 한국 배터리사의 ‘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대차, 이미 미국 공장으로 대비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는 국내 자동차 기업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초부터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가동을 시작한다. HMGMA가 가동되면 현대차의 기존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 등과 함께 현대차그룹은 미국에서만 11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다. 트럼프 정부가 수입차 관세를 대폭 올려도, 현지 대응이 가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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