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가기 전에 보자는 말을 12월에 한다면 이미 늦어버린다. 가만히 있어도 손안에서 빠져나갈 듯 휘발되는 시기가 연말이니까. 해마다 이맘때면 늘 오랜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이달의 생김새 때문이었나 새삼스레 생각하는 아침이다. 11월은 같은 숫자 둘이 나란히 놓여있는 달이다. 달력 위의 숫자를 보며 우정을 떠올린다. 하나의 삶 곁에 놓인 다른 삶, 서로의 곁을 지키면서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는 삶, 우리 삶이 익어가는 것을 바라봐주는 관계, 그게 친구 사이니까.
아홉 살 조카에게 어떤 친구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답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느낌표가 떴다. 그래서 너는 그런 친구가 되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러려고 노력한다고. 서로의 말을 성심껏 들어준다는 것, 경청의 힘은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개인을 북돋운다. 우리는 그 가치를 어릴 때부터 알아보지만 어른이 되면서 무뎌진다.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원하면서도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지 의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초심을 회복할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이런 게임은 어떨까. 데이비드 브룩스의 책 『사람을 안다는 것』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이것이 네 인생(This is your life)’ 게임을 하는 것이다. 너의 올해를 마치 내가 살아낸 것처럼 1인칭으로 바꿔 말하면 된다. 책에서는 연말 즈음 부부가 자주 하는 게임이라고 나오는데, 핵심은 ‘신뢰할 만한’ 관계인 것이므로 마음을 터놓는 친구 사이에서도 좋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 게임을 하지 못했는데, 너를 나로 바꾸는 마법을 상상하기만 해도 벌써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아마 내 친구들은 농담을 섞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울다 웃다 마음이 몰랑몰랑해질 것이다.
윤고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