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쓸쓸한 결말을 맞았을까요. 유품정리사 김새별 작가가 삶과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중앙일보 유료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가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30)을 소개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젠 자꾸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다.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양보받는다.
몸은 늙어 70세가 됐는데 아직도 7살 때가 그립다.”
2018년부터 시작된 일기장은 여러 권이었다.
고인이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적은 기록이었다.

시신은 원룸 건물 옥상 누수 때문에 발견됐다.
보수공사를 하러 온 업체 대표가 아래층까지 물이 새는지 확인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마침 업체 대표는 내 유튜브 채널 구독자였다.
고인의 집 앞에 신문이 쌓여있길래 혹시나 싶었다고 한다.
벨을 눌러봤지만 역시나 응답이 없었다.
‘집이 비었거나 사람이 죽었다.’
일부러 문고리를 여러 번 세게 당겨봤다.
오래된 원룸의 문틈이 헐거워지며 역시 ‘냄새’가 새어나왔다.
내가 글이나 유튜브에서 늘 말하는 그 악취.
보통 사람들이라면 ‘살면서 처음 맡는 냄새’가 풍겼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건물주에게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강제로 문을 개방하고 들어가 보니 침대에서 떨어진 듯한 모습의 시신이 보였다고 한다.
주변에 혈흔이 많았다. 살인사건이라도 벌어진 듯한 피투성이 공간이었다.
범죄는 아니었다.
고인은 각혈을 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피가 솟구치자 일어나려다 굴러떨어진 것 같다고.
바닥을 뒹굴며 이곳저곳에 피를 토했다.
숨진 날만 그랬던 것 같지는 않았다.
줄곧 상태가 안 좋은 채로 노인은 홀로 지낸 것이다.
더 놀란 건 각혈 흔적보다 더 많은 술병이었다.
아마 죽는 그날까지 술을 마신 모양이다.
그가 떨어져 죽은 침대 옆 협탁 위엔 소주 빈병과 반쯤 마신 병이 놓여 있었다.
베란다엔 다 비운 술병들을 가지런하게도 세워놨다.
탁상 달력에도 메모가 빼곡했다.
‘13일: 소주 4병, 맥주 6캔
17일: 소주 6병, 맥주 4캔’
이런 식으로 그날그날 몇병을 마셨는지(아니면 샀는지?)를 적어놨다.
자랑도 아니고 자제도 아니고 대체 무슨….
침대 협탁 밑에는 스프링 노트 여러 권이 놓였다. 일기장이었다.
문장으로 자기 감정을 털어놓은 날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냥 메모장처럼 이것저것을 기록해 뒀다.
그날 만난 사람의 이름, 전화번호, 주소(가능한 경우에만), 특이사항, 성격 등을 빼곡하게 적었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만난 의사, 간호사, 약사, 그리고 다른 환자들의 정보다.
끼니를 때운 식당 사장들의 연락처까지.
가까운 이들도, 지인도 아닌 그냥 마주치는 이들이면 무턱대고 적어놓은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