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매출이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지만, 직원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매출 증가에 따라 고용도 늘어난 아마존이나 코스트코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미국 외 지역의 사업을 줄이고, AI를 도입해 업무 자동화에 집중한 결과로 해석된다.
월마트는 2025 회계연도 기준 연간 매출액 6810억달러(약 932조원)로 전년 대비 5.1% 늘어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5년 동안 연 매출이 1500억달러(약 205조원)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월마트의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직원 수는 5년 전보다 약 7만명 감소한 216만5465명으로 집계됐다. 다만, 이들 직원이 감소된 이유는 미국 외 월마트 지점이 정리된 데 따른 결과다. 월마트 직원 중 미국 고용 인원은 약 160만명으로, 월마트 측에 따르면 인원 수가 10년 동안 거의 변동이 없었다.
월가 분석가들은 월마트가 전자상거래 진출한 데 이어, 운송이나 하역, 가격표 변동 등의 번거로운 업무를 AI를 활용해 자동화한 것이 고용 증가 없는 매출 증대의 원인이라고 본다.
FT는 월마트의 직원 고용 추세가 경쟁사인 코스트코, 아마존 등이 지난 5년 동안 수만 명의 직원을 추가로 채용한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닐 손더스 소매 분석가는 “대부분의 소매 업체는 인건비가 사업 운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운영 시 여러 기능을 자동화하고 싶어 한다”며, “월마트가 이런 부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마트의 최근 행보는 적극적인 업무 자동화 기술 도입이다. 지난 4월 월마트는 냉장 보관 물류 허브와 전자상거래 신속 배송을 위한 물류센터 등에 적용한 노동력 절감 기술을 투자자와 언론에 선보였다.
월마트 측 설명에 따르면 물류센터 내에서 로봇이 알고리즘에 따라 식품을 분류, 포장하고 지역 내 매장의 냉장창고로 배송한다. 이 물류센터는 기존 냉장창고보다 2배 이상 물량을 운송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용은 20% 절감할 수 있다. 또, 기계에 제품별 치수 데이터를 업로드해 제품을 포장하는 작업도 자동화했다. 과거에는 직원이 제품에 맞춰 상자 크기를 고르고 포장했다면, 기계가 알고리즘에 따라 고객 주문에 상자를 맞춤 제작하고 포장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월마트는 이러한 자동화 기술로 기존 12단계에 걸친 작업이 5단계로 줄었으며, 올해 말 예상 비용을 30% 줄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키런 샤나한 월마트 미국 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주문 처리에 3~4시간이 걸리던 과정이 이제 이 건물에서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기대했다.
월마트가 도입한 새로운 기술을 두고 스티븐 셰메시 소매 분석가는 “자동화로 인해 일부 공급망 지점의 직원 수가 극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폴 르웰런 월마트 운영 담당 부사장 역시 “업무 자동화 덕분에 정규직 직원 5명이 매장의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직원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언급했다.
다만, “고용이 없다”고 알려지는 것에 대해 월마트 측은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월마트 경영진은 업무 자동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근로자의 역할이 새롭게 바뀔 뿐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투자자 행사에서 “업무는 자동화될 것이며 일자리는 바뀔 것”이라면서 “앞으로 몇 년 후에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것이고,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월마트 경영진 측은 “사업이 바뀌더라도 총급여 규모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도나 모리스 월마트 최고인사책임자(CPO)는 FT에 보낸 성명에서 “오늘날 많은 일자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변화의 속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200만명이 넘는 직원들의 열정과 헌신이 우리의 성공을 이끌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지난 5월 “구조조정으로 일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1500명을 감원한다”고 내부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앞서 “많은 사람을 고용하겠다”던 것과는 달라진 입장이다. 월마트 임원진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이유를 밝혔으나, 현지 언론은 구조조정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때문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월마트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로 일부 상품의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트럼프 미대통령이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 전가하지 말라”고 비판했는데, 구조조정이 이에 대한 대응 아니냐는 이야기다. 관세로 인한 비용 증대를 구조조정으로 줄여보려 한다는 것.
이와 관련해 월마트 대변인은 “해고는 사업 우선순위와 성장 전략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관세와는 관련이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최가람 기자> ggchoi@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