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방송사 TV 뉴스에 짧은 인터뷰를 했다. 평소 개방되지 않는 종묘 영녕전의 신실에 김건희씨가 함부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왜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이었다. 나름 길게 설명했으나 뉴스에는 10초 정도만 반영됐다. “조선시대 때에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던 장소였을 뿐 아니라 굉장히 신성하게 관리가 되던 곳입니다. 이런 곳을 공식적인 절차도 없이 사적으로 마구 이용을 했다는 건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큰 틀에서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정밀하지는 않다는 생각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아쉬움이 남은 부분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신성하게 여기던 것이면, 대한민국의 시민인 우리도 접근해서는 안 되는가? 그렇지 않다. 당장 조선왕조실록을 보라. 조선 임금도 열람하지 못하던 사료를 지금의 우리는 아무나 어디에서나 본다. 궁궐은 또 어떠한가. 조선시대 궁궐에 몰래 들어온 사람은 두들겨 맞고 변경으로 유배당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일부 제한이 있기는 할지언정, 자유롭게 궁궐을 드나든다. 왕조의 신민(臣民)이 아닌 우리가 굳이 조선시대의 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김건희씨의 행위는 무엇이 문제인가. 기본적으로 그 행위에는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 규범에 대한 존중이 결여돼 있다. 종묘 신실을 평소 개방하지 않는 것은 조선시대식의 금기나 그 보존 때문만이 아니다. 이는 종묘의 가치가 건물 외형만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지닌 경건함과 이를 존중하는 태도라는 무형의 유산을 포함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무형의 유산이 함께 지켜지지 않을 때 종묘의 아우라, 그 진정성은 유지될 수 없다.
경복궁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근정전의 어좌는 20세기의 복제품이고, 건청궁은 21세기에 복원된 전각들이다. 경회루는 치열한 선착순 경쟁을 뚫어야 하지만, 미리 신청만 하면 해설사의 안내 아래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다. 적어도 문화재 훼손의 염려나 유산의 진정성과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일반인이 못 드나드는 휴궁일에 온 궁궐을 휘저으며 다닌 것이 거슬릴 수는 있지만, 공적 목적만 분명하다면 휴궁일을 이용하는 것이 도리어 사리에 맞을 수도 있다. 허리춤에 손을 얹고 짝다리를 짚은 모습이 오만하다고 하거나 “어디 아녀자가 감히 용상에!”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이 초점에 어긋난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모든 일들이 직접적으로 문화재 훼손 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김건희씨가 제대로 된 공적 목적도 없이 자의적으로 규범을 무시하고 사적으로 문화유산을 유용했다는 데 있다. 동료 시민들은 문화유산을 그렇게 대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 규범을 지켜왔는데 말이다.
지금의 문화유산 관리 규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종묘 주변은 지저분하고 번잡하기로 유명했고, 일반인이 궁궐 전각 안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대통령이 경회루 연못 담장에 전각을 지어놓고 낚시를 즐기던 시절도 있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조금만 ‘빽’이 있으면 휴궁일에 궁궐 돌아보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
지난 몇십년간 지속적인 교육과 치열한 논쟁 끝에 우리는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 방식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고 제도와 규범을 다듬어왔다. 최근 근정전은 석조물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하여 관람객의 월대 출입이 금지됐다. 당분간 전각 안은 고사하고 월대도 못 올라가게 됐지만, 우리는 그 규율을 준수한다. 교양 있는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그 제한 이유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권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권력은 그런 곳에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며, 왕조의 신민이 아니라 민주공화정의 시민이기에 우리 공동체의 규범을 준수한다. 비판의 지점은 그곳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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