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저 건너 일편석(一片石)은

2025-10-29

저 건너 일편석(一片石)은

조광조(1482∼1519)

저 건너 일편석은 강태공의 조대(釣臺)로다

문왕(文王)은 어디 가고 빈 대만 남았는고

석양에 물찬 제비만 오락가락 하더라

-시조 지씨본(池氏本)

개혁의 어려움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위수(渭水)가에서 낚시질하고 있는 강태공을 처음 만나 스승으로 모셨던 중국 주나라의 문왕을 그리워한다. 강태공은 문왕의 아들인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고, 그 공으로 제(齊)나라에 봉해져 시조(始祖)가 되었다.

조광조는 중종 5년 진사에 수석 합격하고 후에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하여 부제학·대사헌을 역임하는 동안 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훈구파인 남곤(南袞)·심정(沈貞) 등의 모함과 이상에 치우친 주장에 염증을 느낀 왕의 주도로 기묘사화를 당하여 귀양 간 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현실 정치에서 좌절한 그가 인재를 알아보는 총명한 군주를 그리워했을 법하다.

그는 글과 글씨에 능하였고 문하에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공자묘(孔子廟)에 함께 모셔졌으며, 이율곡·김굉필·정여창과 더불어 동방사현(東方四現)으로 불린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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