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야 산다

2025-10-29

가을하면 떠오르는 게 학창시절 가을운동회다. 운동장에 만국기가 휘날리고 엿장수, 풍선장수와 풍악이 울리는 동네잔치였다. 그 가을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전 학년 계주였다.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는 경기에 목 놓아 청군·백군을 응원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전북특별자치도가 주관하고 전북연구원이 주최한 국정과제 대응 전북자치도 릴레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속았다. 릴레이라 해서 전공인 달리기인 줄 알았는데 세미나였다. 오늘의 주제는 ‘5극3특 구상 속 전북미래성장비전’이었다. 5극은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대경권, 부울경이고, 3특은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다. 5극3특에 전북이 포함된 것은 김관영 지사의 뚝심이다.

대한민국은 수도권 공화국이다. 전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매출 1,000대 기업 90%가 집중된 기형적인 나라다.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 주택·저출산·지방소멸 등의 문제가 파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란 시대정신의 실현이다. 대한민국 1호 시대정신은 지역균형발전이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이를 추진해 왔지만, 수도권은 더욱 비대해졌고 지방소멸은 발등의 불이다.

이런 현실 속에 수도권 공화국에서 벗어나 지방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자 국정과제로 5극3특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을 살린다면서 5극에 수도권을 왜 포함했을까? 모순이다. 목하 대한민국 비극의 원인이 수도권이다. 수도권을 살리자는 것은 곧 지방을 죽이자는 등식이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국민주권 정부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에서 말이다.

지난 10월 1일, 이재명 정부는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시기적절한 정부조직 개편이다. 하지만 간판만 바뀌었지 여전히 개판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날 국무총리 주관으로 제1차 국가기간전력망확충위원회를 개최하여 군사 작전하듯 속전속결로 345kV 국가전력망 사업노선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이 결정으로 무려 3,855㎞에 달하는 70개 노선의 송전탑 사업, 29개의 변전소 건설 등 한전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 모두가 용인반도체 국가산단으로 향한다. 삼성이 입주하는 이 사업은 윤석열 내란 정부의 무도한 수도권 집중,개발독재식 에너지산업 정책의 결과물이다.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대한민국을 대한망국으로 만들려는 망국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북특별자치도의 1년 예산의 60배에 달하는 600조원이 투입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그 크기가 1,140만㎡다. 이는 여의도의 4배이자 축구장 1천600개 규모다. 직접 고용만 11만 명이고, 협력사를 포함하면 30만 명이다. 4인 가족을 가정할 때 120만 명이 생겨 또 다른 용인시가 탄생하게 된다. 아니 현실은 비슷한 규모의 지방 광역지자체가 하나가 사라지는 꼴이다.

이를 용인하고 ‘5극3특’을 운운하는 것은 왠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일까. 대국민 사기다.

가을이다. 지역마다 축제가 한창이다. 내장산의 단풍이 빨갛게 물들 무렵 ‘정읍 시민의 날’ 행사에서 국회의원, 시장, 도의원, 시의원이 조별로 400m 계주를 할 예정이다. 지난 시절 가을운동회의 재판이다. 지방을 살려 대한민국을 살리려는 몸부림이다. 뛰어야 산다.

염영선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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