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만든 세종대왕에 미소를

2025-10-09

스포츠 기자, 중계진이 자주 쓰는 말은 금세 대중의 언어가 된다. 이들이 고민 없이 반복해서 쓰는 표현 중에는 틀린 말도 적지 않다. 잘못된 단어가 수천 번 반복되면 ‘표준’이 되고 왜곡된 표현이 쌓이면 곡해를 낳는다. 기사, 해설에서 피해야 하는 단어, 표현, 어법을 문법, 어법, 저널리즘, 철학을 고려해 설명해본다. 10월9일은 한글날이다. 최소한 글로, 말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보는 게 세종대왕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모습 - 정적인 단어의 오용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양이나 생긴 상태’를 모습이라고 정의한다. 즉 본질적으로 ‘정적인 상태’, 보이는 형체나 외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행동’이나 ‘변화’를 묘사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니다. 따라서 스포츠에서 모습은 사격, 양궁 등 정적인 자세를 뜻하는 것 이외에는 부적절하다. 손흥민이 골을 넣은 모습이 멋있었다는 표현보다는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었다 또는 손흥민이 골을 넣는 장면이 멋있었다 등이 더 적절하다. 선수들도 습관적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더 좋은 경기력, 굳이 영어를 쓴다면 더 좋은 플레이, 더 좋은 퍼포먼스가 상대적으로 더 알맞다.

■뒷발 - 존재하지 않는 신체 부위 : 잘못 굳어진 비표준 표현이다. 앞발, 뒷발 구분은 네발짐승에게만 적용된다. 두 발로 직립 보행하는 사람 신체 중 뒷발은 없다. 힐킥, 백힐, 발뒤꿈치로 찼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보여진다 - 문법적으로 틀린 이중 피동 : 요즘 다수 사람이 잘못 쓰는 표현 중 하나다. 이중 피동형으로 문법적으로 틀린다. ‘보이다’ 자체가 ‘보다’의 피동형인데 ‘-진다’를 붙이면 피동+피동이 돼 어색하다.

■완벽 - 존재하기 힘든 절대 상태 : ‘완벽(完璧)’은 ①흠이 없이 완전함 ② 결점이 없음 등을 뜻한다. 完(완전할 완) + 璧(구슬 벽), 즉 ‘흠 없는 옥’을 의미한다. ‘완벽’은 스포츠 현장에서는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상태다. 골프 해설가는 완벽한 샷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파4에서 두 번째로 친 샷이 완벽하려면 이글이 돼야 한다. 홀에 가까이 붙인 샷을 보고 완벽하다고 한다면 완벽이라는 단어를 잘못 쓰는 것이다. 안정적, 정교한, 실수가 없는 등이 바람직하다.

■플랜B - 상투적인 오용 : 곳곳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플랜A와 플랜B는 완전히 다른 플랜이다. 손흥민, 이강인 등 몇몇이 뛰지 못해 다른 선수가 출전하는 것은 단순 선수 교체라서 플랜B라고 쓰는 건 부적절하다. 반면, 주전이 빠진 상황을 감안해 평소와 다른 포메이션으로 전술을 변경하는 것, 공격적으로 나서 2-0을 만든 뒤 막판 수비에 집중하는 것 등은 플랜B라고 써도 된다. 플랜B를 남용하는 건 문장을 쉽게 쓰고 말하려는 습관일 뿐이다.

■피동형 표현 - 책임을 흐리는 문체 : 활성화되다, 회복되다, 붕괴되다, 변화되다는 표현보다는 활성화하다, 회복하다, 붕괴하다, 변화하다가 낫다. 피동형 ‘~되다’는 행위 주체가 불분명하거나, 외부에서 작용한 결과만을 강조하는 형태다. 반면, 능동형은 주체가 명확하게 행동을 취하는 형태로, 문장이 더 명료하고 힘이 있다.

■~의 - 일본식 번역투 흔적 : 가장 남용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의’가 너무 자주 붙으면 문장이 딱딱하고 일본어 번역투처럼 느껴진다. 숫자를 쓸 때 ‘다섯 명의 선수’ ‘2000명의 선수단’보다는 ‘선수 다섯 명’ ‘선수단 2000명’이 더 적절하다. 전북 현대의 공격수,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에서도 모두 ‘의’를 빼도 된다. ~의는 대체로 소유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미국 포로와 미국의 포로는 다르다. 미국 포로는 미국인 포로를 의미하고, 미국의 포로는 미국이 잡은 포로를 뜻한다. ‘~의’ 앞에 있는 단어를 바꾸면 ‘~의’를 자연스럽게 빼도 되는 경우가 적잖다. 감동의 무대보다는 감동스러운 무대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관중들, 국민들, 시민들, 스포터스들 - 복수 중복 : 이 단어들은 형태상 단수지만 의미상 복수(집합명사) 의미를 지닌 대표적 명사들이다. 즉 단어 하나가 이미 ‘여러 사람 집단’을 뜻하기 때문에 뒤에 ‘들’을 붙이면 중복 표현이 된다. 관중들이 함성을 질렀다는 관중이 함성을 질렀다로, 국민들이 분노했다는 국민이 분노했다로, 시민들이 모였다는 시민이 모였다로, 서포터스들이 깃발을 흔들었다는 서포터스가 깃발을 흔들었다로 각각 바꿔야 한다. 다만 2개국 국민이 한곳에 모인 경우에는 ‘양국 국민들’이라고 쓸 수 있다. 즉 둘 이상 국가를 병렬로 묶을 때는 ‘국민들’로 구분할 수 있다.

■우승을 차지했다 - 부적절한 어법 : ‘차지하다’는 ‘자기 소유로 하다’는 뜻이다. 일정한 공간이나 자리를 점유하거나, 어떤 지위나 재산, 권리 따위를 자기 것으로 한다는 뜻이다. ‘우승(優勝)’은 운동 경기나 경쟁 따위에서 1위를 차지함의 의미한다. 즉 ‘우승’은 행동이나 경쟁 결과로 ‘1위를 함’이라는 상태나 행위 결과를 나타내는 명사다. 다시 말해, 우승은 ‘점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경쟁 결과’ 그 자체다. 우승했다, 정상에 섰다, 1위에 올랐다, 챔피언이 됐다, 우승컵을 차지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선의의 경쟁 -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말 : 선의의 경쟁이라는 표현은 다른 언어에는 거의 없다. 경쟁이라는 단어는 일정한 규칙을 서로 지키며 공정하게 기량을 겨룸을 의미한다.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은 ‘선의의’가 빠진 ‘경쟁’이 나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선수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 선수들이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는 표현은 쓰면 안 된다. 스포츠인부터 ‘선의의 경쟁’이라는 표현을 버려야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경쟁이 아니라 투쟁, 전쟁이 된다.

■스카우터 - 일본식 조어: 영어에 없는 일본식 표현이다. 영어로 스카우트하는 사람은 그냥 ‘스카우트(Scout)’ ‘스카우팅 담당자(Scout Recruiter)’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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