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외정책의 핵심은 미국의 국익을 무조건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로 요약된다. 지난주 워싱턴 한·미 협의가 보여주듯이 미국 우선주의의 파고는 이미 우리나라의 문턱을 넘어섰다. 관세폭탄과 미국이 요구하는 각종 산업협력 문제가 협의 테이블에 올랐으며, 방위비 분담금도 머지않아 논의될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30여일 후에 출범하는 상황에서 대미 협의에 나서는 과도 시기의 대표단은 스스로 한계를 잘 알고 신중하게 처신하리라 본다. 대미 협상이 불가피하다면 새 정부가 공고한 한·미 동맹의 바탕 위에서 솔직하고 우호적인 의견 교환을 통해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순리다.
대미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익 우선’의 자세다. 미국 대표단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협상장에 나오듯이, 우리도 ‘국익 우선’의 자세를 확고히 견지하며, 사안마다 절실함을 가지고 적절한 논리를 개발하여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은 한국과의 무역적자를 불만스러워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대미 수출의 주력 상품인 한국산 중간재가 미국 제조업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그 결과 미국 제조업과 한국산 중간재의 연계 강화가 대미 흑자를 더 키운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5년 방위비 분담금은 1조4028억원인데 거기에는 주한미군 기지 부지 및 건물에 대한 무상공여 부분이 빠져 있다. 현재 정부가 주한미군에 무상공여하고 있는 토지는 해외 미군기지 중 가장 큰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444만평)를 비롯하여 오산·의정부·동두천·창원 등 총 2800여만평에 이른다. 이 토지를 평당 지가 150만원으로 상정하고 연간 토지 수익률을 3%로 치면 연간 약 1조3000억원의 무상공여액이 나온다. 여기에 한국 정부가 부담한 캠프 험프리스 건설비용 100억달러를 연간 수익률 5%로 계산하면 연간 7000억원의 무상공여액이 더 도출된다. 결국 이 토지와 건물의 무상공여 금액만 대충 따져도 한국은 현재의 공식 방위비 분담금의 1.4배를 더 부담하고 있다.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는 순수 무역 외에도 많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대미 수출과 흑자가 많이 늘어난 것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2차전지 등의 국제공급망을 재편하면서부터였다. 미국이 중국 봉쇄 전략에 동맹국을 끌어들이면서 이것이 무역에 영향을 끼쳐 한·중 교역이 감소했으며 그 대신에 한·미 무역과 한국기업의 대미 투자가 급증하였다. 이 과정에서 2019년 114억달러에 불과했던 대미 흑자가 많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2022년(280억달러)부터 10대 무역 흑자국으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2024년에는 557억달러까지 급증하였다. 즉 대미 흑자는 미국의 대중전략 속에서 구조적으로 강요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으로 계속되는 한국 첨단기업의 대규모 대미 투자가 장기적으로 정작 한국에서 첨단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관세폭탄이나 방위비 분담금 증가 요구는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에 막대한 정치적 비용을 치르게 하고 미국에 대한 이미지도 악화시킬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숱한 곡절을 거쳐서 체결 비준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직 국익을 위해 2007년 4월 한·미 FTA를 체결하였다. 2011년 11월 국회 비준을 거쳐 발효된 한·미 FTA는 이후 한·미 무역의 장전으로 정착했다. 그런데 이제 이 협정을 파기하고 미국의 요구사항이 짙게 풍기는 새로운 관세협정을 체결한다면, 우리 사회는 이 문제로 국론이 분열하면서 커다란 정치·사회적 비용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도 마찬가지다. 한·미가 2026~2030년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체결하고 정부가 국회 비준을 받은 것이 불과 엊그제(2024년 11월)였다. 그런데 이 협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자고 하면, 국민과 국회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을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 시대에 우리의 국익은 협상대표단이 이를 최우선으로 놓고 협의하겠다고 결의한다고 관철되지 않는다. 실제로 말뿐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미국의 요구가 비사실적이고 한국의 국익을 얼마만큼 크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며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협상장 밖의 우리도 미국에 합리적인 국익에 기초한 주장을 열심히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