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 화재 보상 후 임차인에 구상… 대법 “책임 되돌리기 안 돼”

2025-12-28

건물 화재로 발생한 손해를 보험사가 이미 한 차례 ‘대신 책임을 부담해’ 보상해놓고, 다시 임차인에게 그 책임을 근거로 금액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보험사가 부담한 책임을 다시 되돌리는 모순에 해당한다고 봤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최근 메리츠화재가 임차인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소송에서 일부 구상권 행사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임차인이 가입한 보험에 임차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대신 부담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보험사가 소유자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임차인에게 구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2022년 8월 한 종합마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작됐다. 건물주는 자신의 건물에 대해 메리츠화재의 소유자 보험에 가입했고, 해당 건물을 임차해 마트를 운영하던 임차인 역시 같은 보험사에 보험을 들었다. 임차인 보험에는 화재로 타인의 재산에 손해를 입힌 경우 이를 보상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화재는 매장 내 수산코너에서 원인 미상으로 발생해 건물 전체로 번졌고, 건물은 전부 소실됐다. 화재로 인한 손해액은 약 6억9000만 원으로 산정됐다. 메리츠화재는 임차인 보험으로 약 4억 9000만 원을, 소유자 보험으로 약 2억 원을 각각 지급해 건물주의 손해를 모두 보전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메리츠화재는 “화재 책임이 임차인에게 있다”며 소유자 보험으로 지급한 금액 중 일부를 임차인에게 돌려달라는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보험사가 한편에서는 임차인의 책임을 전제로 보험금을 지급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책임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다시 금액을 청구한 셈이다.

1심은 메리츠화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재에 대한 임차인의 책임 비율을 따지더라도, 이미 임차인 보험으로 그 책임액 이상이 보상됐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2심은 임차인의 책임이 인정된다면, 소유자 보험으로 지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구상 청구가 가능하다며 보험사의 손을 일부 들어줬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임차인이 가입한 보험에 임차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보상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면, “보험사로서는 소유자 보험금 지급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보험자대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임차인이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 책임 자체를 보험사가 이미 떠안은 경우라면, 임차인에게 남은 책임이 없다는 취지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임차인의 책임액은 약 4억 1800만 원으로 산정됐지만, 임차인 보험으로 지급된 금액은 이를 이미 넘는 수준이었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가 다시 임차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경우, “임차인이 그 금액을 다시 보험사에 청구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며 “원·피고 사이에서 순환소송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이러한 구상 청구에 대해 “결국 보험사가 반환해야 할 돈을 스스로 청구하는 셈이 된다”며, 소송경제에 반할 뿐 아니라 신의성실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