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생존을 위한 클래식

2024-10-22

클래식을 쉽고 편하게 설명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음악을 들려주기 전에 이 음악은 어느 영화의 어떤 장면에 사용됐다고 말하면 자연스럽게 관심도가 올라간다. 핵심은 추억과 공감이다.

하지만 청중의 연령대가 넓다면 고민이 많아진다. 1990년대 유행했던 TV 프로그램에 수록된 음악을 지금 대학생에게 소개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준비돼 있는 클래식이 한곡 있다. 오스트리아 음악가, 하이든이 작곡한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다.

1796년 오스트리아 빈 궁정악단엔 당대 최고 트럼펫 연주자 ‘안톤 바이딩거’가 있었다. 그는 단순한 연주만 가능했던 트럼펫을 직접 개량해 더 많은 음정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인 하이든에게 트럼펫을 개량했으니 그 악기를 위한 멋진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탄생한 음악이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이다.

이 음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친근한 하이든의 작품 중 한곡이다. 다양한 세대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데 1990년대엔 퀴즈프로그램 ‘장학퀴즈’의 오프닝 음악으로 사용됐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방송인 유재석씨가 등장하는 모 학습 프로그램 광고(CF)에 사용됐다. 그리고 가장 최근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했다.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서 ‘생존’이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장학퀴즈’는 문제를 풀며 최후의 1인을 가려내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학습프로그램도 학생들의 생존전략인 공부를 위한 것이다. 당연히 ‘오징어 게임’도 생존을 위한 게임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는 방송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전세계 트럼펫 연주자들에게도 해당한다. 트럼펫 연주자라면 평생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을 공부하고 숙달해야 한다. 대학 입시부터 콩쿠르 그리고 오케스트라 취직 오디션까지 트럼펫 연주자의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이 곡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은 트럼펫 연주자로서 생존을 위해 평생 함께해야 하는 음악이다.

트럼펫 연주자는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 피아노 연주자는 피아니스트(pianist)라고 불린다. 보통 악기 연주자들에겐 접미사 ‘-ist’를 붙이는데 이는 어떤 도구(악기)를 활용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트럼펫 연주자는 트럼펫티스트(trumpetist)라고 하지 않고 트럼피터(trumpeter)라고 부른다. 악기 연주자 중 유일하게 ‘-er’을 사용하는데 이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트럼펫 연주자는 예로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특수한 역할군, 바로 전쟁이나 행사에서 신호를 담당하던 나팔수로 일했다.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은 트럼펫을 전공한 나에게도 오랜 기간 생존을 위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악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클래식을 소개하고 있는 지금도 나의 생존 음악으로 함께하고 있다.

나웅준 콘서트가이드 뮤직테라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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