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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길을 걷는 커다란 개와 마주쳤다. 물론 주인과 함께였는데 연일 몰아치는 강추위에 단단히 준비한 듯 견주의 몸이 온갖 겨울용품으로 꽁꽁 싸여 있었다. 눈만 내놓은 상태의 그는 나를 발견하자 리드줄을 손에 여러 번 감았다. 줄이 짧아지면서 개가 견주의 몸에 바짝 붙었다. 그는 일단 멈춰선 뒤 화단 쪽으로 개를 밀어 넣다시피 했다. 멀리서부터 개를 보면서 작은 기대감에 설레고 있던 나는―두툼한 앞발이나 커다란 코가 내게 툭 닿기를, 가능하다면 개의 목덜미나 등 언저리를 한 번 쓰다듬어 볼 수 있기를 바랐던―아쉬운 마음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뒤를 돌아보니 개는 눈 쌓인 화단에 숫제 온몸을 내던진 상태였다. 납작 엎드려 눈밭을 기다가 벌렁 드러눕는 바람에 사방으로 눈이 튀었다. 그 모습이 몹시 즐거워 보여 나는 눈 쌓인 나뭇가지를 툭툭 치며 걸었다.
생각해보면 대형견과 마주칠 때 견주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손보다는 허리에 리드줄을 단단히 묶은 견주가 많았고 인도를 걸을 때엔 자신의 다리 바로 옆에 개를 두었다. 어느 여름이었던가. 더위를 피해 점점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서던 나는 우리 동네 개산책의 미묘한 룰을 깨달았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될수록 산책하는 개들의 덩치가 커졌던 것이다. 도심 속 대형견들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시간에,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길을 골라 산책하곤 했다.
개를 키우는 나는 그들이 선택한 리드줄이 얼마나 비싸고 튼튼한 것인지 종종 알아본다. 45도 각도로 느슨하게 내려간 꼬리가 주눅 들거나 화난 것이 아니라 몹시 편안한 상태임을 나타내는 시그널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은 나라는 개인의 경우에 한할 뿐 누군가에게는 두렵고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괴로운 마주침일 것이다. 한밤의 산책은 대형견주들이 찾아낸 나름의 대안에 가깝다. 더 깊은 밤, 더 어두운 길을 선택하고 더 여러 줄로 개를 묶고 멀리서 사람이 나타나면 온몸으로 개 앞을 가로막고 서는 모든 선택이 공존을 위한 노력이다. 소형견이라고 해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파트와 주택, 도로와 사람과 차들로 빽빽한 도심에서 개와 함께 살기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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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항상 좋은 결과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개를 완전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고 보호자로서의 각오에는 객관적 인식과 책임감이 필요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우리 생활에 자리 잡은 시간이 길지 않은 것처럼 공존하는 삶에 대한 모색 역시 너무 짧은 시간 이루어졌을 뿐이다. 정답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단계에선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견주들에게 더 큰 책임과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은 개와 함께하는 번거롭고 시끄럽지만 끝내주게 행복한 삶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걸음을 멈추고 개를 가로막아 사람의 안전이 우선임을 보여주는 견주들에게 나는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고는 나 역시 작고 사나운 나의 개를 튼튼한 줄에 묶어 몇 번이고 확인해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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