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 여자는 팔자 세다? 조선시대 왕비 중 5명이 말띠"

2025-12-26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에게 듣는 병오년 ‘말의 해’

2026년 새해에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사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올해의 띠’를 이용해 한 해의 기운을 예측했다. 그해의 수호신이라 할 수 있는 12가지 동물의 의미와 상징을 살펴보며 희망을 품어보는 오래된 풍습이다.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 ‘말의 해’다. 12지의 일곱 번째 오(午)에 해당하는 말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천진기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회장에게 그 답을 들어보기로 했다. 민속학자인 그는 8년간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하는 등 누구보다 우리 일상 속 민속 문화를 잘 알고, 무엇보다 12지 띠 문화에 식견이 탁월하기로 유명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말의 해’를 기념해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말』 책도 천 위원장의 글로 시작한다. 24일 천 위원장을 만나 우리 문화와 풍속에 속에 깃든 말 이야기를 들어봤다.

말은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나요.

“12가지 띠 동물 중 용, 범(호랑이)과 함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띠죠. 말은 ‘신성한 동물’ ‘상서로운 동물’이자 하늘의 사신, 제왕의 출현을 알리는 영물,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선구자·영웅·새신랑이 타는 귀한 동물, 박력과 정력 그리고 스피드의 상징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 등장하죠.”

하늘을 나는 용은 상상 속 동물인데, 말은 실존하는 육지 동물이면서도 종종 날개를 단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잇는 하늘의 사신이기 때문이에요. 고구려 벽화를 보면 안장은 있지만 사람이 안 타고 있는 말이 있어요. 이는 무덤의 주인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거라고 하는데 영혼이니까 직접 말을 탄 모습을 그리지 않은 거예요. 이 말은 지금 죽은 이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태우고 가는 중이죠. 죽은 자를 이승에서 저승까지 안내한다는 ‘꼭두’도 대부분 말을 타고 있어요. 실제로도 말은 육지 동물 중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이라 하늘을 날 수도 있다는 상상력이 보태진 거죠.”

하늘과 땅, 이승·저승 잇는 ‘하늘의 사자’

예나 지금이나 말은 ‘강하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이미지가 강하죠.

“말은 싱싱한 생동감, 뛰어난 순발력, 탄력 있는 근육, 미끈하고 탄탄한 체형, 기름진 모발, 각질의 말굽과 거친 숨소리 등 강인한 인상을 갖고 있죠. 그래서 말의 실체는 우리 일상에서 사라졌지만 말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존재해서 현대인들도 말을 사랑하죠. 말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혹시 오늘 말 타고 오신 분 있나요?’ 물으면 다들 픽 웃는데 ‘포니’ ‘갤로퍼’ ‘에쿠우스’ 이게 다 말을 뜻하는 용어들입니다. ‘천마관광’ ‘은마관광’ ‘백마관광’ 버스를 타본 경험이 있잖아요. 말이 달리는 모습이 들어간 택시미터기도 있고. 어릴 때는 ‘말표 고무신’ ‘말표 운동화’를 신었고요.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말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달리고 있는 거죠.”

2026년 병오년은 ‘붉은 말의 해’라고 하죠. 불(火)의 기운까지 가진 붉은 색 말이라 양의 기운이 강해 새해에는 활력이 넘칠 거라고 합니다.

“말의 해는 갑오-병오-무오-경오-임오로 순행합니다. 갑은 파랑, 병은 빨강, 무는 노랑, 경은 하양, 임은 검정을 상징해서 말의 해가 되면 말 색깔이 각각 표현되는데 사실 띠 동물에 색을 붙여서 의미를 두는 건 우리에겐 없던 풍습이에요. 중국에서, 그것도 2006년을 ‘황금(붉은)돼지의 해’라고 부르면서 시작된 거죠. 2005년이 몇백 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쌍춘년(한 해에 입춘이 두 번 든)이라서 결혼 관련 업체들이 ‘이 해에 결혼을 하면 잘 살 거다’ 마케팅을 했고, 쌍춘년에 결혼한 커플들이 다음해에 아이를 낳을 테니 ‘황금돼지의 해에 태어난 아이는 잘 살 것’이라고 또 홍보를 하면서 시작된 일종의 상술이죠.”

그렇다면 우리 문화 속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 흰 백마(白馬), 두 마리의 쌍마(雙馬), 용과 같은 기상의 용마(龍馬)가 길하다고 여겼죠. 천마는 몸에 빛나는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비상하면서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죠. 백마의 흰색은 광명 즉, 태양의 상징이자 남성의 원리로 신성, 위대함의 관념으로 여겨졌죠. 그래서 옛날에는 신랑이 백마를 타고 장가를 들러 왔고, 이육사의 시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이 시대와 사회를 구원하는 이를 은유했죠. 한 마리보다 두 마리의 쌍마가 더욱 힘차고 길하고. 이 시대를 구원하러 오는 아기장수가 태어날 때는 운명을 같이할 용마(龍馬)가 세상에 같이 나타난다고 생각했어요.”

말에 관한 기본적인 상징은 좋은 것들인데, 유독 여자들에게는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부정적인 표현이 붙어 있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문헌과 자료들에서 이런 속설은 찾아볼 수 없어요. 실제로 조선시대 왕비들 중에 말띠가 다섯 분이나 계셨어요. 당시 왕실에서 팔자가 센 말띠 중전을 들였겠어요.(웃음) 이건 에너제틱하고 활동적인 말의 기운을 남성성하고만 연결 지으면서 생긴 미신이에요. 여성의 사회활동을 꺼렸던 조선시대 풍습과 일제의 잔재가 남아 생긴 거죠. 일본에선 과거 병오년에 스님을 사랑했던 여성이 거절당하고 홧김에 교토에 큰 불을 내는 일이 벌어져 실제로 말띠를 안 좋아합니다.”

띠와 사람의 성격을 연결 짓는 풍습은 왜 생긴 걸까요.

“어떤 띠의 해에 태어났느냐가 그 사람의 성격을 선천적으로 결정하진 못해요. 혈액형처럼 당연히 과학적인 근거도 없고요. 하지만 민속학자 입장에서 그렇다고 띠와 사람의 성격이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주변에서 ‘너는 무슨 띠어서 어떻다’는 말을 덕담으로 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띠 동물의 행태와 속성을 자신의 성격이나 운명과 동일시하게 되고 자기화 할 수도 있거든요.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심리학적·문화적으로는 설명이 되는 공통 요소들이 있고, 어떤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성정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죠.”

맛과 말 발음 비슷 ‘말날’에 장 많이 담가

천 위원장은 “민속언어는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문화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 요소”라면서 올해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를 들려줬다. ‘케데헌’ 열풍이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있는 민화 ‘호작도’ 굿즈 인기로 연결되자 궁금증이 생겨서 지인인 동물생태학자에게 과학적 근거를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까치와 호랑이는 친하냐’ ‘왜 호작도는 소나무 밑에 있는 모습으로만 그려지냐’ 하는 질문이었다.

‘케데헌’ 호작도에 관한 동물생태학자의 답은 뭐였나요.

“옛날부터 유능한 사냥꾼은 까치·까마귀가 빙빙 돌고 있으면 그 밑에 큰 동물이 있다고 믿었대요.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봐도 큰 동물이 사냥을 하면 나중에 주워 먹을 게 있나 싶어 새들이 모이잖아요. 민속학에서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달한다고 하는데, 호랑이는 신의 전령이니 이들이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죠. 그리고 지인이 말하길 백두산에 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눈을 피할 수 있는 소나무 밑으로 주로 다녔다고 해요. 그러니까 호작도는 사냥꾼의 실제 경험과 시베리아 호랑이의 습성, 그리고 민속학이 모여 만든 ‘가능한 이야기’인 거죠.”

‘말날’에 장을 담그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죠.

“우리 세시풍속에서 정월 상오일(上午日·첫 번째 말날. 말날은 ‘말’이라는 의미의 한자가 들어간 날)에 장을 많이 담그는데, 우선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고요.(웃음) 우리말 ‘맛있다’의 ‘맛’과 ‘말’의 발음이 비슷해서 맛있는 장을 담그기 위해 말날에 장을 많이 담근다고 전해지죠.”

천 위원장은 “말에 대한 표현 방식은 시대에 따라 문헌·유물·설화·신앙·놀이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말에 대한 인식이나 관념은 크게 변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며 “말의 미래전설(未來傳說)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2026년 새해 모든 TV뉴스 앵커들의 첫 멘트는 ‘병오년, 말의 해가 밝았습니다. 말은 활력과 정력과 에너지의 상징입니다. 올 한해는 아마 활기찬 한 해가 될 것입니다’일 거예요. 새해에도 우리 모두 힘껏 말 달려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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