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소년과 호랑이 사이에는 무슨 일이…‘퍼펫’으로 상상력을 무대 위에 구현한 ‘라이프 오브 파이’

2025-12-11

“전부 다 말씀 드릴게요. 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당신도 믿게 될 테니까요.”

올겨울 기대작으로 꼽힌 <라이프 오브 파이>는 ‘퍼펫(인형)’을 통해 소설적 상상력을 현실 무대로 끌어올린 일종의 연극이다.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는 맨부커상을 받은 베스트셀러이며, 이안 감독이 2012년 영화화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이야기의 얼개는 화물선 사고로 태평양 한가운데 구명보트에 남겨진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227일 동안 함께 표류하는 내용이다. 병원과 바다를 오가는 무대 위에서 파이는 배의 침몰과 생존에 대한 ‘진실’을 묻는 보험회사 직원에게 자신의 여정을 풀어놓게 된다. 단순한 후일담을 넘어 진실의 다층성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배가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이야기를 영화에선 환상적인 CG를 통해 화면에 구현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이야기를 무대로 옮기면서 ‘라이브 온 스테이지(Live on Stage)’로 장르를 정의했다. 퍼펫티어(인형조종사)들이 ‘연기’하는 동물 퍼펫이 배우처럼 존재감을 드러내고, ‘바다 위 생존’을 보여주는 시각 연출이 더해져 관객에게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독특한 공연이다.

보트에 탈 수 있던 건 파이와 다리 다친 얼룩말, 오랑우탄, 점박이하이에나 그리고 리처드 파커뿐. 이 동물들을 형상화한 퍼펫은 외피를 완전히 덮지 않고, 골격과 관절이 그대로 드러나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사실적 재현보다는 동물의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 많은 상상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몸을 숨기지 않는 퍼펫티어들은 정교한 연기와 몸짓을 통해 묘한 존재감을 무대 위에 드러낸다. 리처드 파커의 경우 세 명의 퍼펫티어가 머리, 가슴, 꼬리를 각각 담당해 한 몸처럼 연기한다. 유연하게 굽이치는 척추와 낮게 가라앉은 보폭, 너풀대는 꼬리와 귀, 그르렁 소리가 들리는 듯한 벌어진 입까지 영락 없는 호랑이다. 여기에 팔을 느긋하게 흔드는 오랑우탄, 날카롭게 파고드는 하이에나, 보트 주변을 매끄럽게 유영하는 바다거북과 물고기까지. 이들이 퍼펫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처럼 느껴지는 지각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2021년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라이프 오브 파이>의 퍼펫티어는 2022년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로런스 올리비에상에서 남우조연상을 공동 수상하며 작품에서의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리 토니 인터내셔널 연출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퍼펫티어를 숨기지 않고 노출하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면 어느 순간 그들이 보이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 위에는 보트와 침대 외에는 별다른 장치가 없다. 하지만 조명과 음향을 결합해 거대한 폭풍우, 수평선과 맞닿은 광활한 밤하늘 등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낮과 밤, 정적과 광풍을 오가는 무대는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해상 공간으로 확장된다.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파이 역은 배우 박정민과 박강현이 맡았다. 파이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생존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믿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때로는 끔찍한 현실이 허구보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는 법이다.

극의 마지막 파이와 헤어지는 리처드 파커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호흡에 따라 몸통을 들썩이던 리처드 파커는 객석을 스치는 듯한 시선을 남기며 그대로 사라진다. 관객들은 저마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무대 바깥으로 이어가게 된다. GS아트센터에서 2026년 3월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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