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들과 식사를 한 뒤 귀가한 전공의 1년차 고은섬씨(27)의 휴대전화에 ‘계엄 선포’ 속보가 떴다. “현실감조차 없는 일”이었지만 ‘일단 국회로 가야 한다’는 지인들 말에 망설임 없이 국회로 뛰었다. 자정쯤 도착한 그곳엔 이미 인파가 몰려 휴대전화조차 잘 터지지 않았다. 고씨는 그때부터 광장의 시민들 곁을 ‘의료지원 자원활동’으로 지켰다. 탄핵 정국 아스팔트 위에서 다짐한 고씨의 결심은 그렇게 싹 텄다.
의대생 최준서씨(22)는 계엄 해제 며칠 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대학생·청년들의 ‘의료 자원활동’을 제안했다. “의료인으로서 지금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라는 고민이었다. 고씨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12·3 불법계엄 이후 일주일 만에 전국 의대·간호대 등에 이들의 제안이 전해졌다. 의대·간호대생 100여명을 포함한 250여명의 청년 의료인이 모였다. 국회 앞과 한남동 관저, 광화문 동십자각 앞 등 ‘내란 종식’을 외친 시민들의 광장 한쪽엔 늘 이들의 천막이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크고 작은 부상 등 도움이 필요한 상황마다 이들이 나섰다.


최씨와 고씨에게 계엄은 “감염·외상처럼 ‘불건강’의 원인”이라고 했다. 최씨는 “사회의학에는 불평등·차별 같은 사회문제도 건강을 해치는 요소라고 나온다”며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당시는 국민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지난 1월 ‘윤석열 구속’을 외치던 시민들이 한남동 관저 앞에서 밤을 지새운 ‘키세스 집회’가 그랬다. 영하 추위를 버티며 철야에 나선 시민들은 은박지를 몸에 두르고 눈을 맞으며 아스팔트 위를 지켰다. 일부 참가자들이 가벼운 저체온증을 보였고, 결국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병원 이송과 보온조치를 돕던 고씨는 그들에게 귀가를 권했다. 그러나 한사코 자리를 지키겠다고 고수하는 그들을 보며 고씨는 “내란 종식이 이들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조치였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지난 겨울의 활동을 ‘자원봉사’ 대신 ‘자원활동’으로 부른다. 돕고 베푼 게 아닌 연대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고씨는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이 절망적인 시기를 겪던 제겐 위로가 됐다”고 했다.
계엄은 끝났지만 고씨에게 병원과 일터에서 만난 ‘아픈 사람들’의 문제는 여전히 고민꺼리라고 했다. 건강과 의료, 돌봄의 문제 앞에서 ‘모두를 위한 의료’가 필요하다는 게 전공의로서 의료 현장을 지키는 고씨의 생각이다. 의대생인 최씨는 학내 소수자 인권기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혐오와 불평등을 걷어내는 일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의 민주주의를 치료한 건강한 연대의 경험은 이들의 다음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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