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좀 쉬었다 하겠습니다.” 지휘자의 말에 단원들이 긴장을 풀었다. 연주를 이틀 앞둔 무대 위의 연습 시간. 협연자 없는 오케스트라 연습이 끝나고, 잠시 주어진 휴식이었다.
여기는 벨기에 브뤼셀의 플라제홀. 곧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빈 무대에 올랐다. 손목을 한번 쭉 편 뒤 왼손을 건반 위에 올리고 손가락들에 단단히 힘을 줘 구부린다. 건반 가장 아래쪽의 낮은음에서 시작해 가장 위쪽까지 단번에 질주하는 음표들. 빠르고 정확하며 빈틈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 반짝이는 사운드를 듣고 무대에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이제 전원 착석. 본격적인 리허설이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허공에서 떨어뜨려 첫 음을 냈다.
피아노는 30마디 만에 왼손으로 합류했다. 그 후로도 왼손뿐이다. 건반 전체를 훑고, 거대한 화음을 만들 때도 피아노 위에는 한 손만 있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사뿐히 올려져만 있다.
매끄럽게 흘러간 연습은 30분이면 충분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는 잠시 휴식하기로 한다. 손열음이 자리에서 경쾌하게 일어나 무대에서 내려왔다.
“피아노 소리가 잘 들려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잠깐의 틈을 타, 우리는 무대 바깥 복도에 나란히 앉았다. 왼손만, 그것도 무자비하게 쓰는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프랑스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손열음이 올해 초 음반으로 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연주하지 않은 곡이다.
올해 150주년이 된 라벨과 사랑에 빠진 손열음, 이렇게 기사에 쓰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 곡은 정말 너무 어휴…. 힘들어서 싫어질 정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