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이번에도 결국 엔비디아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작년 엔비디아의 'GPU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이하 GTC)' 행사에서 CEO 젠슨 황의 친필 사인을 받는데 그쳐야만 했던 삼성전자는 올해도 "참여를 기대한다"는 평가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이에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삼성전자가 이제는 반성문이나 계획서 보다 기술력을 증명해 보여줘야할때라는 지적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지난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열린 'GTC 2025' 행사 기자간담회를 통해 블랙웰 울트라에 삼성전자 HBM3E 탑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삼성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GTC는 엔비디아가 주최하는 행사로 인공지능(AI), 로봇 등 최신 동향 기술들을 공유하는 자리다. 올해는 이달 17일부터 21일(현지시각)까지 진행됐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젠슨 황의 삼성전자 HBM에 대한 언급이었다. AI와 함께 HBM 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엔비디아는 이중에서도 핵심 고객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HBM 물량 대부분을 소화 중이지만 삼성전자는 여기서 소외됐다. 이에 삼성전자는 작년 연간 영업이익에서 SK하이닉스에 처음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젠슨 황은 작년 GTC에서 "우리는 현재 삼성전자의 HBM을 테스트하고 있다. 기대가 크다"고 밝힌 후 삼성전자의 부스에 직접 들러 HBM3E 12단 실물 제품에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는 사인을 남겼다.
그는 또한 올해 1월 세계 최대 IT·가전전시회인 'CES 2025'에서 "삼성전자가 HBM 개발에 곧 성공할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여전히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는 HBM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작년 GTC부터 삼성전자가 1년 가까이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품질 검증)를 시도했으나 끝내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반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2022년 HBM3(HBM 4세대)를 시작으로 작년 HBM3E(5세대) 8단, 12단도 업계 최초 양산에 성공한데 이어 이달 19일 HBM4(6세대)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들에 제공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SK하이닉스는 특정 고객사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엔비디아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이끌어온 기술 경쟁력과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당초 계획보다 조기에 HBM4 12단 샘플을 출하해 고객사들과 인증 절차를 시작한다"며 "양산 준비 또한 하반기 내로 마무리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SK하이닉스는 HBM4 양산 시점을 내년으로 잡았다가 이를 앞당겼다. 엔비디아가 HBM4 공급 일정을 6개월 정도 당겨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HBM4에서도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한걸음 앞선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도 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더 이상 벌리지 않고 신뢰 회복을 하려면 확실한 납품 소식을 통해 기술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풀이다.
삼성전자도 HBM 시장에 대한 초기 대응 실패를 인정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3E 12단 제품 생산을 이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에 본격화하고 HBM4의 경우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세웠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은 지난 19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시장 트렌드를 늦게 읽는 바람에 (HBM) 초기 시장을 놓쳤지만 현재 조직개편과 모든 기술 개발 토대를 마련했다"며 "차세대 HBM4에서는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