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토종 배추의 맛이 그립다면…시즌 한정 ‘봄동’ 맛보세요

2025-02-11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꽁꽁 언 배추를 뽑아 수제비를 끓이고 전을 부쳐 먹으며 마음속 냉기를 녹인다. 한국인에게 배추는 마음의 고향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배추가 한국 대표 식재료가 된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토종 배추는 지금 시중에서 유통되는 결구배추의 절반도 안될 정도로 작고 빈약했다. 당연히 식재료로 효용성이 낮았고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김장의 주재료는 배추가 아닌 무였다.

배추가 무를 제치고 김치의 주연이 된 계기는 품종 개량이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는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가난하고 굶주린 대한민국에 혈혈단신 도착했다. 그는 벼를 포함한 농작물을 개량하는 데 매달렸고, 중국 배추와 교잡해 크고 실한 결구배추를 만들어냈다.

종종 품종 개량 전 토종 배추의 옛 맛을 찾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잊힌 토종 배추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요즘 제철인 봄동을 맛보면 된다. 봄동이란 특정 품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겨울철 노지에 파종 후 봄에 수확하는 배추를 말한다. 추운 날씨로 속이 들지 못하고 잎이 옆으로 퍼져 자란다.

냉이·달래와 함께 봄 채소를 대표하는 봄동은 달큼하고 사각거리며 어린 채소 특유의 연한 식감을 지녔다. 김치로 담그기보다는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해 쌈·겉절이·된장국 재료 등으로 활용한다. 밀가루나 찹쌀풀을 살짝 입혀 지져낸 봄동전은 씹을수록 고소하고 향이 진해 막걸리 안주로 찰떡궁합이다.

서양식으로 변형된 봄동 레시피도 있다. 양상추를 대신해 시저 샐러드의 주재료로 넣거나 파스타에 곁들이는 식이다. 새우젓 혹은 서양 멸치젓인 안초비와도 잘 어울린다. 지금보다 다양한 레시피가 개발된다면 우리나라 농촌의 시즌 효자 작물로도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제철 봄동은 김장용 결구배추보다 수분이 많고 비타민C와 칼슘·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비타민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 함유량이 높은 채소이기도 하다.

떡잎이 작으면서 연한 녹색을 띤 것이 상품으로 분류된다. 잎이 반점 없이 깨끗하고 하얀 부분이 짧으면서 선명해야 더욱 고소하고 달큼해 맛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김장배추와 달리 미리 소금에 절이는 대신, 먹기 직전에 간장이나 고춧가루 등 양념과 버무려 밥이나 국수에 곁들인다.

봄동은 이른 봄 잠시 동안 출시되는 채소이다보니 제철이 아닌 때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외식업계에서는 시즌 한정 메뉴로 봄동 요리를 내놓는 경우가 많다. 서울역 역사 내에 있는 중식당 ‘도원스타일’에서는 봄동을 곁들인 우육탕면을 판매 중이다. 중국 남부나 대만·홍콩 등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면 한번쯤 접해봤을 메뉴다.

진한 쇠고기 육수에 간장을 베이스로 한 국물에는 중면 정도 굵기의 국수와 깍둑썰기한 쇠고기 고명, 그리고 제철 봄동잎이 올라간다. 한국인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향신료를 뺀 대신 육향을 강조하고 봄동으로 식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느끼할 수 있는 쇠고기와 쫄깃한 면 중간에서 봄동이 절묘하게 밸런스를 잡아주며 곧 다가올 봄을 떠올리게 만든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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