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할 50년:한인타운 미래 모습은] 공관은 태극 품고, 길 위에 원형 광장 뜬다

2024-09-22

앤드모어의 미래 타운 디자인

윌셔 선상 3곳 랜드마크 가능성

사비털어 8년간 타운전체 분석

대각선 인도 만들어 연결 제안

LA총영사관, 건곤감리 형상화

북창동순두부, 14층 주상복합

잔디광장 차도 위 원반 산책로

지하엔 콘서트홀, 하늘 감상도

지난 50년간 발전해왔던 한인타운이 향후 50년도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에 대한 질문은 범커뮤니티 차원에서 힘을 합쳐 고민해야 하는 커다란 명제다. 한인 건축사무소 앤드모어파트너스(대표 션 모·강혜기, 이하 앤드모어)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을 던졌다. 션 모·강혜기 대표는 미주중앙일보 창간 50주년에 발맞춰 한인타운의 발전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물 디자인 안을 공개했다. 두 대표는 디자인을 통해 타운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디자인에 담은 미래 건물은 세 개다. LA총영사관 재개발 디자인 안〈본지 9월 3일자 A-1면〉을 비롯해 북창동 순두부 부지와 윌셔잔디광장 자리를 이용한 디자인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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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은 모두 한인타운의 가장 대표적인 도로인 윌셔 불러바드 선상 웨스턴 애비뉴와 버몬트 애비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통상 한인타운의 범위를 정의할 때 동서 방향로는 두 길을 꼽는다. 총영사관과 윌셔 잔디광장은 동서의 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한인타운의 관문으로서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게 앤드모어 측의 설명이다.

단절된 현재의 한인타운

디자인 안에는 앤드모어가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건축가로서 가져온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치열했던 고민의 과정은 철저한 조사를 기반으로 한다. 앤드모어의 두 대표는 지난 8년간 사비를 털어서 한인타운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 5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는 ‘한인타운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구성부터 시작해서 조닝까지 다양한 정보를 망라했다. 한인타운이 어떻게 개발됐는지 역사부터 시작해 주거, 상업, 종교시설의 분포는 물론 주차장의 위치까지 포함돼 있다.

앤드모어 측이 조사결과는 한인타운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한인타운은 더는 한인이 주거하는 공간이 아니다. 윌셔 길을 중심으로 한 사무실 지구와 6가를 중심으로 하는 상업 지구를 제외하면 많은 부분이 주거지역이긴 하지만 한인보다는 타인종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인이 살지 않는 코리아타운이라는 아이러니가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한인타운 내부에서도 서로 단절이 있다는 것 또한 조사를 통해서 파악한 문제점이다. 앤드모어측에 따르면 한인타운은 동서로는 연결돼 있지만 남북으로는 단절돼 있다. 한인은 물론 타인종까지 포함해서 한인타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길은 윌셔, 6가, 올림픽 등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8가, 제임스 M 우드 대로 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번화한 상업지구가 아니라 단순한 주거지역이기 때문이다. 도심은 주거시설과 상업시설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활기를 띠는데 타운은 연결없이 분리단절돼 있는 모습이 문제점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앤드모어 측이 진단한 문제점들은 한인타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다. 이런 문제점들이 점점 더 커지면 한인타운의 정체성은 상실되고 커뮤니티의 중심으로서 역할도 축소될 수 있다. 향후 개발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한인타운이 존속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미래엔 걷고 싶은 동네로

한인타운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요소는 상업시설의 부흥이라고 두 대표는 입을 모았다. 한국문화를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상업시설이 한인타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타인종들이 가장 손쉽게 또 즉각적으로 한국문화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식당이기 때문에 상업시설 중에서도 식당의 중요성이 크다고 의견을 전했다.

식당을 비롯한 상업시설들이 부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요소로 꼽힌 것은 보행 편의성이다. 한인타운이 ‘걷고 싶은 동네’가 돼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온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리틀 도쿄가 가장 가까운 예시다. 리틀 도쿄를 방문한 사람들은 ‘동네’를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특정한 식당에서 식사하기 위해서 들르는 것이 아니고 걸으면서 분위기를 즐기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 패턴이 많다. 이런 방문객들은 한 곳의 식당 방문에 그치지 않는다. 식사 전후 커피도 마시고, 디저트도 먹고, 쇼핑도 한다. 동네 전체가 살아난다. 하지만 앤드모어가 파악한 한인타운 방문객 대부분은 관심이 집중된 몇 군데 맛집을 들렀다가 식사를 마치고는 바로 떠나는 패턴이 많았다. 따라서 한인타운 전체의 부흥을 위해서는 보행 편의성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디자인에는 이를 최대한 구현했다.

인도를 대각선으로 연결

6가는 상업지구. 윌셔길은 업무지구. 8가는 주거지구. 앤드모어에서 분석한 한인타운은 동서로 뻗은 길마다 다 성격이 다르다. 문제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각 거리가 서로 연결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행자들이 자연스럽게 이 거리를 넘나들도록 연결을 해줘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디자인 안에 반영돼 있다.

총영사관과 북창동 순두부 부지 재개발 디자인 안을 살펴보면 두 건물 모두 통행인들이 자연스럽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윌셔 길과 6가를 이어주는 통행로는 모두 사선이다. 격자무늬로 반듯하게 짜인 한인타운 안에 걷는 재미를 줄 만한 ‘사선으로서 연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딱딱한 공관, 태극기 품다

LA총영사관 재개발 디자인은 상공에서 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태극기의 형상화를 테마로 했다. 태극 문양을 건물 기둥 네 개의 디자인으로 적용했고 건곤감리를 건물 외벽에 표현했다.

딱딱할 수 있는 재외공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물 외관에 전체적으로 곡선을 강조했다. 외벽을 유리로 만들어 공관 내부에 자연광이 최대한 쏟아지도록 그렸다.

타운 복판 초대형 주상복합

앤드모어측은 현재 윌셔와 킹슬리 교차로에 있는 북창동순두부 부지를 초대형 주상복합문화 랜드마크를 세울 수 있는 곳으로 꼽았다. 디자인은 규모부터 엄청나다. 162만5000스퀘어피트 부지에 14층 건물을 그렸다. 외관 디자인은 미래 도시에 온 듯하다. 기본 사각형의 건물 각면을 튜브와 반구 모양으로 팠다. 반구 모양의 입구 전면은 대형 스크린으로 꾸며 몰입형 영상을 상영할 수 있다. 건물에는 호텔, 아파트, 사무실, 극장, 소매점, 식당들이 들어서고 옥상에는 정원도 꾸몄다.

잔디광장이 차도 위로

윌셔잔디광장 디자인은 타운에서 찾아보기 힘든 녹지를 위한 공간이다. 한인타운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녹지는 유지하되 보행로를 차도 위로 떠 있도록 설계했다. 언뜻 보면 육교 같지만 직선적이지 않고 원형의 길이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써서 동양적인 미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완성됐다. 지하에는 콘서트홀을 설치했다. 한인타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에도 활용할 수 있게 다목적 공간으로 설계됐다. 녹지를 중심으로 아래위 모두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앤드모어측은 윌셔잔디광장이 한인타운에 부족한 세 가지인 녹지, 커뮤니티 공간, 랜드마크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도 위까지 나온 산책로는 높이 건물을 짓지 않고 독특한 디자인만으로도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녹지를 해치지 않고 지어진 산책로와 콘서트홀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 지상의 녹지와 지하의 콘서트홀을 잇는 창도 디자인 포인트 중 하나다. 창을 통해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먼 이국땅에 있더라도 같은 하늘을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앤드모어측은 설명했다.

시공간 단절된 타운, 연결해야 존속

앤드모어 션 모·강해기 대표

유학생 출신 한인 1세 건축가

설립 10주년에 사회공헌 결심

도시설계로 타운에 해답 제시

낮엔 한인 북적·밤엔 타인종

정체성 살릴 건물·거리 필요

길 개방하고 벽낮추면 더 안전

타운 개발 수수료 재투자하면

꿈 아니라 실현 가능성 충분

건축사무소 앤드모어파트너스(이하 앤드모어)의 션 모·강혜기 공동대표는 한인타운에 가장 필요한 것을 ‘지속가능성’이라고 얘기했다. 사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에는 한인타운이 앞으로 점점 규모가 줄어들거나 정체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인타운이 커뮤니티의 공감대가 없이 난개발로 치닫다 보면 결국 한인사회의 기반으로서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결책의 하나로 디자인 안을 발표했다.

디자인이 만들어진 배경은 흥미진진했다. 한인타운 부흥을 위한 다른 아이디어도 넘쳐났다. 고민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자인에 대해 총평한다면.

“윌셔 불러바드 선상의 세 곳을 선정해서 디자인 안을 만들었다. 10년간 한인타운을 기반으로 한 건축사무소로서 활동했고 자비를 들여서 한인타운에 대해 조사를 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서 느낀 바를 디자인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었다.”

-보고서를 왜 만들었나.

“8년간 자비를 들여서 조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만들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둘은 한인타운을 기반으로 활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10년 전에 새롭게 건축사무소를 설립하면서 한인타운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가 터전으로 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한 가장 큰 이유는 건축가로서 작게나마 사회 공헌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 공헌이라면.

“한인타운을 기초로 하는 사회에서는 직업군별로 모두 맡은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인 은행들은 금융을 통해서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부동산 회사는 부동산 매매나 임대를 통해서 기여를 한다. 건축가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몫이라면 당연히 한인타운이란 곳을 어떻게 하면 더 풍요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건축을 통해서 이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인타운을 계속 조사했더니 문제점이 보였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디자인 안을 냈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사회공헌 중 하나다.”

-타운에서 어떤 문제점이 보였나.

“문제점을 하나의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단절이다. 이미 한인들은 한인타운에 많이 살지 않는다. 오렌지카운티 등 외곽에 주로 거주한다. 한인타운의 낮은 일하는 한인들로 북적이지만, 저녁이 되면 힙한 바를 찾아오는 타인종들로 완전히 교체된다. 낮과 밤의 인구구성이 이렇게 극적으로 달라지는 동네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단절이 계속되면 한인타운이 축소되거나 한인사회의 기반이라는 정체성이 희석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예 빈민거주지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인타운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해결책은 무엇인지.

“단절이 있으니까 연결해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행 편의성이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녀야 연결된 도시가 된다. 그리고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치안 문제도 보행 편의성을 높이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는 원래 홈리스가 진을 치고 있기 힘들다. 한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서울의 강남역이나 명동같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노숙자를 찾기 힘들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니는 동네가 되면 치안도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치안은 한인타운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일부에서는 벽을 쌓아야만 치안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인타운 인근 아파트를 설계할 때도 벽을 높게 쌓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을 조경으로 감싸서 커뮤니티와의 조화를 꾀했다. 우려도 있었지만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치안 관련해서 불만 제기를 받은 적은 없다. 총영사관 디자인을 보면 건물이 보행로로 쓸 수 있게 돼 있다.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지나갈 것이다. 개방성이 오히려 치안에 도움이 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걷기 좋은 동네를 만들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가 있다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6가를 일방통행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길을 일방통행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보행 편의성은 크게 증대될 것이라고 본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리틀 이탈리 지구를 가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이 일방통행이라 걷기 편해졌고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윌셔잔디광장을 활용한 건물의 디자인을 설명해준다면.

“한인타운에는 랜드마크가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다만 건물을 짓는데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다. 리틀 도쿄에 자리 잡은 부도칸처럼 커뮤니티를 위한 젖줄로서 기능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한인타운에 절대적으로 녹지가 부족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녹지는 살리면서 지하에 있는 콘서트홀은 커뮤니티 행사를 위해서 활용하도록 설계했다. 차도까지 나온 산책로는 높이 건물을 짓지 않고 독특한 디자인만으로도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특히 신경 쓴 것이 콘서트홀과 녹지를 잇는 창이다. 창을 통해서 하늘을 보는 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 먼 이국땅에 있더라도 같은 하늘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디자인 실현 가능성은.

“정부 기관이나 기업과 협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인타운 개발과정에서 기관과 업체들이 한인타운에 재투자를 안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타운에 건립된 아파트는 유닛 한 개에 8500달러의 레크리에이션 수수료를 정부에 낸다. 최근에 건립된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보고 추정하면 매해 1000만 달러 이상 걷힐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규모의 세금 중 한인타운에 다시 투자된 액수는 얼마인지 묻고 싶다. 정말 기업과 기관이 한인타운의 부흥을 위한 의지만 있다면 자원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나.

“건축가는 그저 건물을 올려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한인타운을 기반으로 한 건축사무소로서 한인타운을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둘은 모두 유학생 출신의 이민 1세대다. 주류사회에 완전히 섞여서 살아갈 수도 있는 2세대나 3세대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인사회는 우리 정체성의 일부다. 디자인 안을 보고 그 안에 숨겨진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한인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우리가 디자인 안을 통해서 던진 화두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게 돼 한인타운이 좀 더 풍요로운 곳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우리가 그동안 해온 모든 조사와 디자인을 위해 해온 노력이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조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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