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구룡성채’를 추억하며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꿈꾸다

2024-10-13

1980년대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인근에 ‘구룡성채’(구룡채성)라는 구역이 있었다. 무허가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난립해 ‘수직 빈민가’를 이룬 초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구룡성채는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철거됐다. 누군가는 구룡성채를 낭만의 추억으로 기억한다. 오는 16일 극장 개봉하는 영화 <구룡성채: 무법지대>는 구룡성채처럼 사라진 홍콩 누아르의 전성기를 재현하려 한다.

정 바오루이(정보서) 감독은 <구룡성채>를 연출하기 전 ‘홍콩 누아르의 대부’ 두기봉 감독이 제작한 <엑시던트>(2009) <모터웨이>(2012)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 <구룡성채>에는 고천락·홍금보·곽부성 등 ‘구세대’ 배우들부터 임봉·유준겸·오운룡 등 ‘신세대’ 배우들까지 홍콩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두루 출연한다. 홍콩 영화의 세대교체와 혁신을 선언하는 듯하다. 홍콩 누아르에 대한 감독과 배우들의 애정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밀항한 가난한 이민자 ‘찬록쿤’(임봉)은 ‘미스터 빅’(홍금보)이 이끄는 범죄조직 삼합회의 물건을 훔쳐 달아난다. 찬록쿤이 우연히 다다른 곳은 전설적인 무술 고수 ‘사이클론’(고천락)이 지배하는 구룡성채였다. 구룡성채에서 ‘신이’(유준겸)를 비롯한 친구들을 만나 처음으로 따뜻한 보금자리를 갖게 된다. 한편 ‘미스터 빅’과 그의 부하인 ‘킹’(오운룡)은 사이클론을 몰아내고 구룡성채를 차지할 음모를 꾸민다.

홍콩 누아르는 범죄 영화의 세계를 배경으로 무협 영화의 액션을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구룡성채>는 1980년대 홍콩 누아르 전성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서사의 완성도보다는 비장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화려한 무협 액션에 집중한다. 사이클론이 눈을 가리고 싸우는 장면이나 온몸으로 철문을 막아선 장면은 두기봉 감독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엽위신이 연출하고 견자단이 출연한 걸작 <살파랑>(2005)의 무술감독이었던 타니가키 켄지가 액션을 디자인했다. ‘구세대’ 배우들은 특수효과를 입힌 중국 전통 무술을 구사하지만, ‘신세대’ 배우들은 고난도 액션 동작을 고스란히 소화했다. 찬록쿤의 버스 격투 장면, 산이가 구룡성채를 오르내리며 칼을 휘두르는 장면, 킹의 추격을 구룡성채 사인방이 저지하는 장면 등에선 타니가키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만화적인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홍콩 누아르는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1986)을 필두로 1980년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홍콩 제작사들은 자국의 영화 시장이 작았기 때문에 해외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확정되면서 중국의 문화적 억압을 예상한 영화인들이 대거 홍콩을 빠져나갔다. 홍콩 영화산업의 최대 시장이던 한국이 문화를 개방하면서 할리우드와 일본 영화가 들어온 영향도 컸다. 홍콩 누아르는 비슷한 배우·각본·연출을 답습하고 질적인 성장에 실패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2000년대에도 유위강·맥조휘 감독의 <무간도>(2002),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2005), 엽위신 감독의 <도화선>(2007) 등의 ‘네오 홍콩 누아르’가 등장했지만 홍콩 영화 산업은 전체적으로 침체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 바오루이 감독은 여전히 우직하게 홍콩 누아르를 만들며 다시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정 바오루이 감독은 지난 7월 KBS 인터뷰에서 “미래는 미지(未知), 모르는 것”이라며 “1980년대에 홍콩 영화는 전성기를 맞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홍콩 영화가 주류영화가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다. 경험 있는 감독과 신예들이 함께 탐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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