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유상증자를 둘러싼 불신의 벽

2025-04-02

잦은 유증 시비는 ‘한국적인 현상’

한화에어로 역대 최대 유증 추진

피해의식 팽배한 일반 주주 반발

금융 당국 주주·기업 가교 나서야

올해로 창립 73년을 맞는 한화그룹의 정신은 ‘신용과 의리’다. 그런데 요즘 주식시장에선 ‘신용도 의리도 저버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주력 계열사이자 우리나라 방위산업을 대표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추진에 뿔난 일반주주들의 얘기다. 신진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는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왜 그럴까.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는 상장기업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을 활용할 수 있고,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기관 대출을 받는 등 빚을 지기도 한다. 주주를 대상으로 하는 증자도 한 방법이다. 일반주주는 단기적인 주가 하락을 동반하는 증자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보통 대주주가 기업 경영권까지 행사하는 한국에서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는 일반주주와 다르다. 경영환경 급변에 대비해 내부 보유 현금은 아껴 쓴다. 부채 증가도 썩 달갑지 않다. 탄탄한 지분을 확보했다면 증자가 가장 부담이 작다. 지배구조 위협도 없고, 주가가 내려가면 증여 등을 통해 경영권 승계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른바 ‘국장’(국내 증시)에선 ‘증자는 지배주주만 유리하다’는 일반주주의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유상증자가 매우 드문 ‘미장’(미국 증시)을 맛본 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 교수 지적대로 유상증자 시비가 잦은 것 자체가 매우 한국적이다. 우리 자본시장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한화에어로를 둘러싸고 시비는 더욱 격렬해졌다.

한화에어로가 유상증자 발표를 한 달여 앞두고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의 한화오션 보유 지분을 현금 1조3000억원에 매입한 것도 일반주주의 반발을 키웠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나눠 가진 한화에너지를 지원했다는 지배구조 논란까지 불거졌다. 증권가에서도 주주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년까지 2년간 6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만큼 ‘AA-’의 높은 신용등급에 기대 저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 차입을 한 뒤 갚아나갈 수도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19일 유상증자 발표 당시만 해도 반겼던 금융감독원이 돌연 태도를 바꿔 관련 증권신고서의 정정을 요구, 일반주주를 더욱 자극했다.

한화에어로 측은 “1∼3년 안에 영업 현금흐름을 뛰어넘는 과감한 투자 없이는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자금을 조기에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또 차입으로 단기간 부채비율이 급등해 재무구조가 악화하면 경쟁 입찰에서 불리한 만큼 유상증자가 최선이라고 호소한다. 한화오션 지분 7.3% 매입은 양사의 육·해·공 방산 패키지 글로벌 영업을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며 승계 논란도 일축했다. 재계 일각에선 단기 투자수익을 노리는 ‘단타꾼’의 개입으로 유상증자 시비가 잦아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기업은 투자자와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야만 자본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평소에도 주주들과 교감하면서 기업 전략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동시에 자본시장의 눈높이에도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앞서 신주 발행이 기존 주식의 94.9%에 달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던 현대차증권도 주주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금감원의 정정 요청에 대폭 보완한 신고서를 제출한 데 이어 자진해서 세부 내용까지 추가 정정한 끝에 유상증자 흥행에 성공(청약률 102.78%)할 수 있었다. 현대차증권은 이를 위해 개인·기관투자자와 134회 유선 및 대면 미팅을 진행하고 접수된 요청사항을 이사진에 보고하는 한편 지난 1월에는 밸류업(가치제고) 공시를 통해 중장기 성장전략 및 주주환원 계획도 투명하게 공유했다.

금융 당국이 일반주주와 상장기업 간 가교로 나서 불신의 벽을 허물어 주길 당부드린다. 기업의 자금 조달 시점 및 수단, 사용 목적이 적정한지, 이사회가 이를 고려해 정당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는지 깐깐하게 사업계획까지 검증해 일반주주의 피해의식부터 보듬어 줘야 한다. 기업을 상대로는 주주와 대중 친화적인 방법으로 자주 소통하도록 독려해야 할 것이다. 유상증자를 둘러싼 불신의 벽을 이대로 두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요원하다.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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