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강물의 말을 받아적었다

2024-10-25

‘자기 안에 꽃이 있어야 꽃이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진가 지선희 안에는 ‘물꽃’이 있다. 수표면에 윤슬이 반짝일 때, 무너진 기슭에 드러난 풀뿌리에 강물이 걸려 휘돌 때, 어룽어룽 자갈을 내비칠 때, 빛의 굴곡에 따라 피고 지는 무수한 물꽃을 보는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새겨진 이야기들이, 강물의 사연을 알아채게 한 것이다.

유년 시절, 어린 자식들을 먼저 앞세운 어머니는 속병이 깊었다. 물만 보면 속이 시원하다고, 물 같이 바람 같이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태화강이 가까워서였을 것이다. 작가는 울산에서의 성장기 내내 그 말을 듣고 자랐다.

장년이 되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떠나보내고 오빠마저 잃고 난 후에, 어머니의 말을 이해케 되었다. 물을 보자 자신 안의 응어리진 무엇이 물살에, 바람에 풀려 날아갔다.

반구천·대곡천·유촌·구량천·전읍천·능동천·작괘천·반천·반곡천…. 사진기를 들고 태화강의 골짜기마다 흐르는 지천들을 찾아다닌 것이 그때부터다.

지천들이 어머니 얼굴의 주름 같았다. 어머니의 주름 골에 흐르던 눈물의 강이 자신을 키웠고, 대지 위에 갈래 진 강과 지천들이 이 땅의 사람들을 키워낸 것을, 물가를 걸으면서 깨달았다. 강물이 시간처럼 흐르는 흐름 속에서 사람이, 풀과 물고기와 꽃들이 피고 졌다.

강에 엎드려, 강물의 말을 들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진기의 초점이 허락하는 거리만큼 물에 다가가면, 우렁우렁한 물소리로 인해 외계가 닫히면서 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두 다리와 몸을 삼각대 삼아, 물이 하는 말, 빛을 통해서 혹은 갈대 뿌리나 풀잎 등 사물을 건네서 하는 말을 받아 적었다. 2년여 동안 한 달에 20여 일을 꼬박 강에 나갔고, 그렇게 받아 적은 이야기들이 쌓여 지선희의 사진 시리즈 ‘물꽃’이 되었다.

“물꽃 작업을 통해서 상실의 고통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라고, ‘물꽃’을 피운 작가는 말한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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