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흐느끼는 돌과 ‘먼 곳’에 대하여

2025-09-04

사람은 참 이상하기도 하지. 죽어본 적도 없는데, 죽음을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을 타고 생성과 변형이 반복하는 격류에 휩쓸린다. 우리는 좋든 싫든 우주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 삶이라는 것에 동참한다. 이 소용돌이는 영원히 지속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언젠가 죽고, 나의 죽음으로 격류는 끝난다. 왜냐하면 온 것은 가고 시작한 것은 끝나는 게 생명 세계의 보편 원리이니까.

우리 중 태어나는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제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다. 이 태어남에 내적 필연성은 없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파먹으며 산다. 그 생명 우주에 초대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이 명쾌한 진리를 꿰뚫어보고 “인간은 참 이상하다. 죽어본 적이 없는데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아무것도 허락하지도, 아무것도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난다. 그리고 언젠가 죽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어느 해 여름 서해안의 해변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평범한 돌이었다. 그것을 책과 필기구가 있는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배고픔도 모르고 자라지도 않는 돌을 오래 두고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읽고 쓰는 중에도 틈틈이 돌에게 눈길을 준다. 이 돌은 어디에서 왔는가? 돌을 쥐면 손에 퍼진 수용체 감감 속에서 그것이 둥글고 표면이 매끄럽다는 걸 알 수 있다. 돌 표면의 매끄러움이 시간의 유구한 흐름 속에서 마모와 변형을 거듭한 결과임을 증언한다.

돌은 저 먼 태고에 큰 바위에서 쪼개진 파편이었을 테다. 돌은 비바람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성된 것인데, 이 돌에 윤곽과 형태를 부여한 것은 자연의 시간일 테다. 시간은 돌의 형태를 빚는 조각가다. 돌은 자연과 시간이 낳은 잔여물이다. 수동의 완고함으로 빚어진 돌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는다. 이것에서는 비와 바람, 대지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돌이 굴러다닌 편력의 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마음은 어떤 복잡성과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돌에게는 백지 같은 순수함 밖에 없다. 이 돌을 마음이라고 하자. 돌은 아무 의지도 없는 무생물이고 죽음의 항구적 형태로 굳어진 물질이다. 비누처럼 쉬이 닳지 않는 돌은 우주의 침묵과 고요하게 조응할 뿐이다. 태어나지도 않을 뿐더러 영원히 죽지도 않는 이 침묵의 고형물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내가 시간의 포획 속에서 죽는 존재인 까닭이다.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돌이 운다. 심장도 마음도 없는 돌이 흐느끼다니! 그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날 낮엔 붉은 동백꽃이 피어났는데, 돌이 흐느끼는 밤엔 하얀 꽃잎 같은 눈이 펄펄 날렸다. 한밤중에 쓰던 걸 멈추고 돌의 흐느낌에 고요히 귀를 기울이는 오, 죽음을 보는 자다. 즉물성과 침묵의 세계에 갇힌 동물은 죽음을 보지 못한다. 오직 생각하는 존재들만 죽음을 엿본다. 돌은 죽음을 모르고 따라서 울지 못한다. 울지 못하는 돌이 흐느끼며 울다니!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을 책상에 올려두고 바라본다. 모든 생물이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세계의 자명함이다. 마치 샘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우리는 운명처럼 세계를 만난다. 산 자들의 꿈과 갈망의 푸른 힘으로 꽃이 피고 지며 계절은 순환한다.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과 세상과 작별하는 사람은 동일한 존재다. 죽는 사람은 죽음 그 자체로 돌아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노래한다. “죽음에 이른 사람이 보는 건 이미 죽음이 아니라 ‘먼 곳’이다.”(두이노의 비가-제8 비가) 나는 책상에 놓인 말하지 않는 돌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돌의 지속되는 침묵이 저토록 숭고할 리는 없을 테다. 짧고 비천하지만 찬란한 생명을 가진 개체 중 하나인 나도 언젠가 죽음의 덫이 없는 자유로운 세계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자로 다시 태어나 살 수 있을까?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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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돌과 ‘먼 곳’에 대하여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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