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대심판정의 ‘빛의 10계단’

2025-05-27

헌법재판소가 뜻밖의 관심을 받은 올 상반기, 뉴스에 자주 등장한 그림이 있다. 한옥 서까래와 문살 모양을 살린 대심판정의 뒤편에 걸린 ‘빛의 10계단’(사진). 높이 5m 60㎝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꽉 채운 그림이다. 하동철(1942~2006) 전 서울대 미대 학장은 좌우 5개씩 총 10개의 캔버스를 이어 만든 대형 화면 위에 이 그림을 그렸다. 스프레이로 흰 바탕을 깔고 먹줄을 튕겨 한 치의 오차 없이 균질한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그 위에 그려 넣은 파랗고 빨간 테두리, 한가운데 불꽃 같은 노란 빛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좌우대칭을 이룬다.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무형의 빛을 깔끔하게 시각화했다. “가장 분명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했던 그에게 빛은 변함없는 우주적 질서와 본질이었다. 명확한 세계를 지향한 그의 빛 시리즈는 서울대 행정관에서도 볼 수 있다.

대심판정에서 재판관들은 앉는 높이, 입는 옷, 보는 것도 다른 이들과 구분된다.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큰 영향을 미칠 결정이 긴 전망과 높은 가치 지향하에 이뤄지길 바라는 장치일 거다. 법복을 걸치고 높이 60㎝ 심판대에 앉은 이들에게, 정면 눈높이에 걸린 ‘빛의 10계단’은 어떻게 보일까.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빛의 폭포일까, 아니면 아래로부터 분출해 올라가는 빛일까. 그림으로 희망과 자유, 그리고 궁극의 평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하동철은 2006년 정년을 1년 앞두고 갑작스러운 위출혈로 먼저 빛의 세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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