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앞에 사람 키만한 높이의 파란색 말이 등장했다. 말을 본 사람들은 하얀 면 티셔츠에 가지각색의 펜으로 이 말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르코 카발로’라는 이름을 가진 이 말은 이탈리아에서 정신병원 폐쇄 운동을 하던 정신장애인들이 만든 것으로, 정신장애인 해방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말 그림 옆에 ‘미쳤다고? 아니, 나답다고!’라는 문구를 함께 적어넣었다.
송파정신장애동료센터·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025 매드 프라이드 서울’ 행사를 열었다. 매드 프라이드(Mad Pride)는 정신질환 및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차별과 편견에 맞서 ‘미쳤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긍정하려는 시도다. 이 행사는 5월24일 ‘세계 조현병의 날’을 맞아 진행됐다. 정신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 관심 있는 시민들 200여명이 참석했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온 뇌병변 장애인 조우리씨(42)는 “다른 장애 유형들은 나름 많이 알려져 있고 지원 정책 등이 발전하기도 했는데 정신장애 영역은 덜 한 것 같다”며 “이런 캠페인을 통해 정신장애인들의 존재와 그들이 경험하는 어려움 등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조현병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는 임주은씨(24)는 ‘우리의 정신병 일지’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다. 임씨는 “딸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내게 엄마의 병을 말해주지 않아서 여태껏 엄마가 하는 병적인 행동을 증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며 “영화를 통해 나도, 관객들도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행사 무대에 올라간 다섯 명의 정신장애 및 질환 당사자들은 “정신장애인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고 외쳤다. 정신장애 경증을 갖고 있는 최민석씨(25)는 “엔터산업에 취업하는 과정에서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면접에 떨어지는 것이 일상이었다”며 “결국 저는 중소기획사에 장애인 특별채용 취업을 했는데, 정신장애인도 뉴진스·블랙핑크 같은 슈퍼스타 아이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다”고 했다.
정신장애인들이 병원에 격리·강박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조현병을 갖고 있는 당사자인 이호준 한국정신장애자립지원센터 활동가는 “정신병원에서 격리, 강박을 당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경우도 있고 아프다고 풀어달라고 해도 그대로 방치당하는 사례들이 많다”며 “어쩌다 보니 당사자가 된 건데, 그 때문에 인권이 완전히 무시당하는 상황이 참 힘들다”고 말했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활동가도 “외국에서는 단계적으로 약을 줄여가고 지역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치료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행사 참여자들은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진단명은 정체성이 아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여의도 공원 인근을 행진했다. 병원복을 입은 7명의 활동가들이 행진 대열 앞에서 병원 침대 두 개를 끌었다. 이들은 “병원과 침대에서 격리, 강박 당하는 사람들이 사회로 나와 함께 잘 살아나가자는 의미에서 침대 끌기 퍼포먼스를 한다”고 말했다. 행사 사회자는 “이 자리가 우리가 미쳤다는 것을 뽐내고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축제였으면 한다”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