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문화와 이웃 만들기

2025-05-09

요즘 우리나라에는 어렵고 짜증 나는 이야기들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우리와 남남처럼 지내던 나라 쿠바와 외교 관계를 맺었고, 특히 문화 영역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외교 관계의 정상화에는 뜻밖에 북한의 도움(?)이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사실인지 몰라도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항의와 반대를 하러 온 북한 외교관들에게 쿠바 측이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전에는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같은 나라이며 단지 북한만이 정통 국가라는 설명을 믿고 그대로 따랐었는데, 이제 북한은 양측이 전혀 관계가 없는 별개의 민족이고 별개 국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남한과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맺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난해 쿠바와 공식 외교관계 수립

현지서 최근 문화 교류 행사 열어

영화 상영과 토론회 등 내용 풍성

양국간 교류·협력이 큰 결실 맺길

문화에 관심은 늘 있었지만, 행사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가깝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케임브리지대 방문 25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행사를 기획하면서 주제를 ‘햇볕 정책’으로 했었는데, 의외로 영국 측 발표자 사이에선 비판적이거나 불분명한 반응이 있었다. 재작년 방문 30주년을 기념하는 같은 행사 때는 주제를 ‘문화’로 했는데 기대 이상의 매우 긍정적인 발표가 있었고 한류에 대한 학술적 관심도 꽤 높다는 것에 감명이 깊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워낙에 정치인 중 문화에 관심이 깊은 분이었다. 야당 시절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영화 ‘쥬라기공원(1993)’의 흥행 수입이 현대자동차 100만 대 수출 수익과 같다는 보도를 보고 놀랐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런 영화 만들기가 자동차 100만 대 만드는 것보다 쉬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다. 좋은 콘텐트, 훌륭한 대본, 배우, 감독, 음악, 영상 처리, 기술…. 그러나 무엇보다도 검열 같은 외부 제약이나 국가 간 문화 교류에 있어 장벽을 쌓는 것 등이 성공적인 문화 산업을 저해하는 것이라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 업적에는 문화적 성취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년 후 일본에 근무하면서 문화의 현실적인 영향을 현지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드라마 한 편이 평소 옆 나라에 별 관심도 없었던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이해와 공감을 낳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때가 일본 대중들이 한국을 진정한 이웃으로 느낀 몇 안 되는 시기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했다.

오랜 시간 교류가 막혀 있던 나라, 상호 간 특별한 이해나 교감은커녕 오히려 잘못된 오해나 편견과 어쩌면 적대감까지 있을 수 있는 나라 쿠바와 전격적으로 정상적 관계가 이뤄진 데에는 우리 측 외교 안보 당국자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문제는 소원했던 국가 간 이해와 공감 그리고 협력이 이어지기 위해선 역시 문화면에서 교류가 앞서야 할 것 같았다. 이 쿠바와의 학술, 문화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은 단순히 두 나라 사이의 이해를 돈독히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쿠바는 어떤 면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문화적 혹은 역사적 영향 하에 있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 이외에 스페인인들이 지배적인 위치로 정착했고 많은 흑인 노예들을 데려왔다. 이어 인접한 이웃 국가인 미국의 영향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한국-쿠바 두 나라는 교류를 통해 문화적으로 더 풍요로운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중반부터 양국 문화 교류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했지만 역시 예상했던 바와 같이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쿠바는 공용어가 스페인어이고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널리 사용되는 것 같지 않았다. 이외 전력이나 기타 교통·통신 등 사정이 원활하지 못해 의견 교환 역시 쉽지 않았다. 어떤 때는 일주일이나 인터넷 통신이 두절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점은 매사 정부가 개입하고 관청의 요구나 승인이 있어야 최종 결정이 난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조기에 행사 개최에 대해 비관적이었지만, 쿠바 대사관 개설 후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돼 지난달 중순 행사 일정이 정해졌다. 행사는 전문가들의 토론회와 한국 영화 상영 그리고 문화 행사에 이어 친화와 공유를 상징하는 비빔밥 잔치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행사 중 그간 쿠바 측이 우리에게 궁금하게 여기던 일들이 몇몇 설명된 것으로 안다. 첫째는 최빈국에서 이른 시일에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한국의 성공 비결과 같은 민족인 남북이 대조적 형태를 보이는 것에 관해서였다. 나는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성공 이유로 우선 교육열과 중첩되는 위기에 대한 능동적이고 창의력 있는 대응을 들었다. 그리고 남북 간의 차이 중, 북한은 ‘만족의 문화’로 자기들에 관해 자긍심이 강하고 매사 만족하는 반면, 남한은 ‘불만의 문화’로 끊임없이 자신에 관해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더 나은 대안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당일 상영된 강제규 감독의 영화 ‘1947 보스톤’은 대한민국 건국 이전에 일반 대중들 차원에서 일어났던 독립과 국가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자존심을 그리고 있는데, 현지인들의 이해를 도왔을 것으로 믿는다. 쿠바 측에서도 앞으로 양국 간 원활한 학술, 문화의 교류를 바라며 특히 미술 분야에서 한국 진출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모처럼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된 두 나라 사이에 앞으로 이런 교류와 협력이 많은 결실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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