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적 규제, 대기업 지정 제도 전면 폐지해야"

2024-11-19

'종합 6위, 제도적 환경 24위.' 유엔 산하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2024년 세계 혁신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받아든 성적표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혁신을 추구하지만, 정부는 그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과도한 규제 환경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얘기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잠재력마저 잃어가는 한국 경제. 뉴스웨이는 '세계기업가정신 주간'을 맞아 기업인들의 혁신 활동을 옭아매는 규제 정책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제언한다. [편집자주]

쿠팡은 한국기업일까, 미국기업일까. 쿠팡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한국지사 지분 100%를 보유, 한국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쿠팡 창업자 겸 CEO인 김범석 의장은 미국 국적 한국인이다. 이에 김 의장이 총수 지정을 비켜 가자 이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창업 기업이 해외 법인으로 이전하는 일종의 '플립(Flip)'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쿠팡이다. 쿠팡 외에도 성장 기회를 엿보기 위해 해외로 떠나가는 스타트업들이 많다는 얘기들도 쉽사리 접할 수 있다.

이들이 한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갈라파고스 규제'라 불리우는 대기업집단 규제에 대한 지적이 빠질 수 없다. 대기업들에 대한 엄격한 잣대에 기업 스스로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까지 생겨날 정도다.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2024년 대기업집단 지정현황'에서 올해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은 총 88개로 작년보다 6개 늘었다.

제도가 처음 도입됐던 1986년 32개를 기록했던데 비교하면 약 175% 증가한 수준이다. 제도 도입 이래 두배 가량 늘어난 셈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는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이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대기업집단을 지정하고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3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대기업들에 대한 구시대적 착오 규제로 오히려 경제 성장의 발목만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 제정 당시만 하더라도 시장개방도가 낮아 일부 기업들의 독점이 문제 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경제인연합회(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021년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와 관련해 발표한 제안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시장개방도는 1980년대 65.6%에 불과했지만 2010년대 91.5%로 상승했다. 또한 한국은 지난해 기준 전세계 59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 발효하고 있을 만큼 개방도가 높아졌다.

여기에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가 만들어진 명분이기도 한 대기업들의 경제력집중도 높지 않다. 한경협이 2020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기업데이터 1000개 이상인 19개국과 한국을 대상으로 매출 및 자산 100대 기업의 경제력집중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10년간 한국 100대 기업의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58.1%에서 2020년 45.6%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30대 기업의 매출 집중도는 42.1%에서 31.1%로, 10대 기업의 매출 집중도는 26.1%에서 19.6%로 떨어졌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낮은 편이었다. 한국 기업 매출액 중 100대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19개 국가 중 15위 수준이다. 30대 기업의 매출 집중도 및 10대 기업의 매출 집중도로 따져봐도 OECD 19개 국가 중 각각 14위, 11위로 하위권이었다. 대기업들에 대한 매출 집중도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다는 뜻이다.

일본에도 국내의 대기업집단지정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지만 2000년대 이후 사실상 폐지된 상태다. 일본은 지주회사 보유를 전면 허용(1997년)하고 출자제한제도를 폐지(2002년)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대기업집단지정제도가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처럼 낡고 케케묵은 규제가 오히려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풀이다. 이는 단순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이나 중소, 중견기업들에도 해당된다.

애초 기업을 시작하려는 스타트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둥지를 트거나 해외로 이전하는 '플립' 현상들도 벌어진다. 중소, 중견기업들은 대기업규제를 피하기 위해 성장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피터팬 증후군'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규제는 대기업들의 성장뿐만 아니라 유니콘 기업의 탄생마저 좌절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전문가들은 포지티브식 규제보다는 네거티브식 규제로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규제를 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황인학 국민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는 "(기업들의) 경제력을 억제하기보다 남용할 경우에만 처벌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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