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도 10척 납기 지켰다…바위밭을 '조선시티'로 일군 25년

2025-09-17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던 2021년 베트남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4월 이후 대유행으로 번지면서 수도인 하노이와 남부 최대 도시 호찌민이 봉쇄되고 야간 통행금지 조치까지 시행됐다. 베트남 중부 카인호아성에 있던 HD현대베트남조선(HVS)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선박 인도 시기를 미루기는 어려웠다.

결국 HVS 직원들이 나섰다. 현지 직원들은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회사 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했고 수주한 10척의 선박을 지연 없이 선주에게 인도해냈다. HVS 관계자는 “직원들과 회사가 하나 돼 이룬 기적”이라며 “HVS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96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HVS는 25년이 훌쩍 지난 현재 직원 2800여 명을 포함해 5000명가량이 일하는 베트남 최대 규모 조선소로 성장했다. 설립 이후 10여 년간은 선박 수리나 개조를 주된 사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2011년 3월 베트남 정부의 산업 고도화 정책에 맞춰 신조 사업으로 전면 전환했다. 지난해 총 15척의 배를 건조해 발주처에 넘겼고 앞으로 추가 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23척으로 건조 규모를 확대할 계획도 내놓았다. 설립 초기 HVS는 거친 바위투성이 땅이었지만 지금은 건물과 작업장, 그리고 항해를 준비하는 배들로 가득 차 있다.

HVS는 국내 조선사들이 해외에서 뿌리 내린 유일한 사례다. 과거 많은 조선사가 해외 조선소 운영을 검토하거나 추진한 적이 있었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중국·브라질·유럽·중동에서 기술 협력의 형태로, 때로는 지분 취득 형태로 진출을 시도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HVS의 성공 비결로 세 가지가 꼽힌다. 먼저 설립 초기부터 HVS는 베트남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데 주력했다. 이들과 한국의 직원들이 함께 협력하면서 현재까지도 HVS는 큰 노사 분규 없이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흔하지만 HVS는 사업 초기 기존 베트남 사업장에서는 드물었던 복지 정책을 누구보다 먼저 도입했다. 기숙사 보수, 자녀 장학금 등에 지속 투자했고 지역사회를 위해 지역 학교 장학금, 해양 환경 청소 등을 지원했다. 특히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나트랑 바다축제’는 지역 발전에 큰 기여를 해 지금도 지역 대표 행사로 손꼽힌다.

이런 노사 간의 끈끈함은 위기일 때 더 빛을 발했다. 실제로 2017년 11월 태풍 담레이가 카인호아성을 직격했을 때 HVS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HVS가 위치한 카인호아성은 태풍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17년 태풍 담레이는 베트남 전역의 주택 1300채를 완파했고 12만 채는 부분적으로 피해를 봤는데 이 중 80%가 카인호아성에 집중됐다. HVS도 10일간 전력 공급이 끊기고 골리앗 크레인 등 중요 장비들이 파손됐다. 당시 직원들은 “정말이지 다시 가동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회사인 HD현대미포(010620)의 한국 파견 직원들과 베트남 현지 직원들이 복구에 뛰어들며 3개월 만에 정상적으로 운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방 정부와의 순탄한 관계도 큰 역할을 했다. 베트남 역시 중국의 ‘관시’ 문화와 마찬가지로 정부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부동산 인허가 같은 것은 지방 인민위원회와 긴밀한 관계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HVS는 설립 초기부터 지방 정부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필요할 때마다 카인호아성 정부는 우군이 됐다. 예컨대 2000년 HVS가 위치한 반퐁경제구역은 여전히 좁은 시골길 같은 도로망이 전부였는데 HVS가 요청하자 지방 정부는 지방도로 13.5㎞를 확충했다. 올해도 HVS가 시설 확장을 추진하고 있을 때 카인호아성 정부는 4~6번 부두 신설 및 시설 확장을 위한 투자 계획을 흔쾌히 승인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조선소를 관통하는 지방도로가 사고 위험도 높고 생산활동에도 지장을 준다고 건의하자 카인호아성 정부는 도로까지 이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HD현대미포의 뛰어난 기술력과 영업력은 이런 노력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게 했다. 성장 과정에서는 HD현대미포의 글로벌 마케팅 네트워크가 일감 걱정을 하지 않도록 했다. 이 결과 설립 이후 올해 1월까지 HVS는 싱가포르·영국·일본·그리스·덴마크·이탈리아 등의 고객에게 화물선과 유조선 183척을 인도할 정도로 일감은 꾸준했다. 특히 HVS의 현지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주효했다. 실제로 HVS는 베트남 학생들을 한국의 울산대로 유학을 보냈고 이들을 다시 HVS에 채용해 고도화된 인력을 충원했다. 현지 직원들도 3~6개월 본사에 파견해 트레이닝을 거치게 해 숙련 노동자들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HVS의 올 들어 7월까지 수주실적은 총 29척, 16억 20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연간 목표(10척, 5억 2000만 달러) 대비 약 320% 수준이다. 현재 수주 잔량은 현재 59척으로 약 3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HVS 관계자는 “카인호아성 정부의 관심과 동반자적 의식은 베트남 조선 산업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라며 “경제적 성과뿐 아니라 카인호아성이 국가 해양경제의 중요한 거점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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