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경제 위기에 직면한 韓·日 과거사보다 실용 외교 주력할 때" [월간중앙]

2025-05-27

[석학 인터뷰] ‘일본통’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제안

일본 경제 추월했지만 尹 정부의 ‘탈중국’ 전략 미스로 저성장 수렁에 빠져”

“日 증시·부동산 상승했지만 아베노믹스 부정적, 인플레로 서민 분노 임계점”

“트럼프 집권 후 일본이 中으로 향한 이유 간파해야, 삼성전자·현대차도 동조”

한·일 관계는 게걸음의 반복이다. 외교, 안보, 경제 등 하드컬처 측면에서 협력할 공간이 넓음에도 과거사 문제에 번번이 발목이 잡히는 형국이다. 여기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이슈까지 포개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패권전쟁 시대가 격화할수록 유사한 입지를 공유하는 한·일의 공동 대응은 절실해진다. 특히 통상 등 경제 현안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전문가는 난해한 현상도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김현철(63)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권위와 대중성을 확보한 경영학자다. 김 교수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박사 학위, 쓰쿠바대에서 부교수를 지낸 뒤 모교로 돌아와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 CNS·아모레퍼시픽 등의 자문 교수를 맡았고, 문재인 정부 경제보좌관을 거쳤다. 2023년 9월에는 일본의 팽창주의를 예견한 스테디셀러 〈일본이 온다〉를 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캠프에 상대적으로 일본 전문가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대두하는 현실에서, 향후 대일 정책의 조력자가 될 여지도 존재한다.

5월 8일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일본과 적대시하고,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일본과 밀착한다’는 프레임부터 깨야 할 때”라고 적시했다. 두 나라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 정책도 세계정세 속에서 바라봐야우리가 길을 잃지 않는다는 시선이었다.

“가마우지 이론에서 벗어난 한국 경제”

올해로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그 60년은 한·일 양국 경제의 협력과 경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난 60년을 어떻게 결산할 수 있을까?

“거시적으로 봐서 앞의 30년과 뒤의 30년을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앞의 30년(1965~1995년)은 세계가 동서로 나뉜 냉전시대였다. 그 속에서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 진영에 들어갔지만, 미국·일본과의 협력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30년 동안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협조가 굉장히 중요했다. 일본에 ‘한 수 배우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후 30년은 판이 바뀌었다는 것인가?

“최근 30년(1996~2025년)은 탈냉전 시기였고,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시장이 열렸다. 세계화의 기적이라는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때 우리는 ‘잃어버린 30년’에 진입한 일본과 ‘결별’했다. 그 시기 일본 경제는 수축·정체돼 있었다. 특히 전자와 자동차 산업은 일본과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시기였다.”

한때 일본과 한국 학계에선 양국 경제 관계를 ‘가마우지 이론’에 빗대며 “한국이 수출을 많이 할수록 실속을 보는 건 (핵심 부품을 한국에 공급하는) 일본”이라고 지적했는데, 이제 탈피했다는 의미인가?

“전반기 30년은 한국이 하청과 같은 상태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가 활약하면서 오히려 일본 전자산업이 붕괴했다. 일본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으로 축소됐다. 전반기 30년 한·일 경제관계가 수직적 갑을 관계였다면, 최근에 가까울수록 독자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변모했다.”

2010년대 들어서 한국 경제가 일본의 그것을 추월했다는 소위 한·일 경제 역전론이 등장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평균임금은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 예를 들어 대기업 초봉은 우리가 훨씬 높다. 일본에서 최근 나온 데이터를 보면, 2022~2024년 3년 연속으로 한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일본을 능가했다. 사실 지난해 말 일본에선 센세이셔널하게 보도된 바 있다.”

위기를 과장하며 에너지로 삼는 일본 특유의 호들갑 문화도 작용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면도 있다.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 같은 이는 ‘일본이 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한국의 일본 추월론에 대해 ‘국뽕’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냉정하다.”

김 교수는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경로의 초입에 진입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2023년 가을, 일본이 팽창하며 한국의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책을 출간했다. 당시만 해도 논쟁이 일었지만, 그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4%로 추락했다. 대다수 경제학자 사이에서 V자 회복 주장이 나왔지만, 나는 L자형 장기 저성장 가능성을 더 높게봤다. 실제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예측만 봐도 1%대 저성장 아니면 제로 성장이다. 우리나라 70년 경제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 결과 ‘피크 코리아’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는 시대가 돼 버렸다.”

왜 尹 정부 들어서 ‘피크 코리아’가 불거졌을까

일본이 왜 ‘잃어버린 30년’에 빠졌는지 안다면, 우리가 답습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결정적 계기는 플라자 합의(1985년. 인위적으로 달러 약세, 엔화 강세를 유도. 이 결과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급감)였다. 일본 입장에선 해서는 안 되는 합의였다. 하지만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부는 레이건 정부와 합의하며 저성장의 입구를 만들어 버렸다.”

한국은 미국과 플라자 합의 같은 걸 한 적이 없는데 왜 일본식 저성장에 갇혔나?

“구조가 비슷하다.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합의는) 미·중 패권전쟁 국면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이는 2012년 탄생한 일본의 뉴라이트 정권(아베 신조 내각과 그 세력)과 맥락을 같이한다. 여기서 ‘인도’는 인도양을 의미한다. 즉, 인도양과 태평양의 해양세력끼리 뭉쳐서 대륙세력을 봉쇄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여기에 한국이 참여하면 우리 경제가 굉장히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봤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올인 외교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들린다.

“윤 정부는 대륙시장 봉쇄의 첨병 역할을 자임했다. 안보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러면 안 됐다. 하지만 윤 정부는 탈중국을 내세우며 경제적으로도 중국과의 디커플링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당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을 비롯해 다수 경제학자가 우리의 제1위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충격이 오면 한국이 저성장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나도 같은 견해였다.”

왜 그런가?

“한국은 수출 개방형 통상국가다. 수출에 충격이 오면 내수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실제 경제 쇼크가 왔고, 올해와 내년 0% 아니면 1% 성장 정도가 예측되는 지경이다. 일본이 정부의 경제 운영 실책으로 잃어버린 30년을 맞는 것과 유사하게 한국도 윤 정부가 안이하게 인도·태평양 전략에 들어가 탈중국으로 가며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 있다는 기시감이 든다. 실제 계엄 국면에서 올해 1분기는 역성장(-0.2%)이었다.”

현 이시바 시게루 내각은 아베와 정치적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그렇다. 일본의 ‘1955년 체제’로 자민당 정권이 출범했다. 구주류, 올드라이트라고 한다. 이들의 전략은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며 경제 개발에 올인하는 것이었다. 이시바도 올드라이트 계열이다. 다만 일정 부분 뉴라이트의 지지를 받았다. 2012년 출범한 아베의 뉴라이트 정권은 안보의 대외 팽창을 통해 동북아에서 중국을 누르고 새로운 패권국가로 대두하자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아베의 신주류 정권은 한·일 과거사를 수정, 미화하고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으려 했다.”

당시 한국은 보수 성향 박근혜 정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수정주의를 내세우는 아베 정권과 척을 졌다. 여성 대통령이었기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했다. 또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 70년 행사에 참여해) 중국 천안문 광장에 올라가는 등 항일적 면모를 보여줬다. 그 이후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북한과의 한반도 프로세스에 집중했기에 아베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당시 문 정부는 독자적 신남방정책을 폈기에 일본과의 접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윤 정부가 들어서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함께했다. 한·일 관계 가 굉장히 좋아진 듯 보였지만, 지난 30년간 개척했던 대륙시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각에선 양적완화에 치중한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며 닛케이가 최고치를 찍는 등, 일본이 기나긴 디플레이션의 덫에서 빠져 나왔다고도 본다.

“한국에서는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 경제가 좋아졌다는 해석이 상당히 많은데 오히려 (일본에선) 반대다. 교과서에도 없는 정책을 취하면서 엔화는 약세가 됐고, 일부 수출기업은 좋아진 듯 보여도 일본의 중소기업, 서민, 자영업자는 물가 인상에 허덕이며 빈부 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래서 정작 일본 내에선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그리 높지 않다.”

일본이 美 국채 매각설 흘리는 배경

그렇다면 지금 일본 증시가 잘나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우리의 국익과 일본의 국익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 경제를 봉쇄하는 쪽으로 나가면 반사이익을 얻는다. 중국에 투자됐던 자금이 빠져나오면 일본으로 돈이 가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 부동산, 주식 가격이 올랐다. 하지만 일본 서민들은 물가 상승으로 흔들리고 있다.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는 오르니 실질임금이 하락한 셈이다. 엔화 약세로 한국, 동남아, 대만 등에서 관광객이 몰려와 관광지를 들쑤시고 다니니 사실 부글부글 끓을 지경인 것이다. 지금 일본은 그런 ‘이중구조’ 속에 있다.”

가뜩이나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관세 공격에 직면한 일본이다.

“실질임금 감소로 일본 국민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이 앙등하고 있다. 최근에는 쌀값이 두 배로 폭등했다. 이 와중에 트럼프의 관세가 들어온 것이다. 일본은 원래 전자와 자동차 두 바퀴로 굴러가는 국가였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 전자산업을 황폐화시켰고, 자동차 외바퀴 구조가 됐다. 여기에 트럼프가 24% 관세(기본관세 10%, 상호관세 14%) 직격탄을 먹이자 일본에서 ‘국난’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도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에 버티고 있다. 이시바 총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꽤 강경한 입장으로 임하고 있는 배경이다.”

일본이 금리 인상 카드를 레버리지 삼아 미국의 관세에 대응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더라.

“얼마 전,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이 미국 국채를 팔겠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일본은 미국에 수출하며 들어온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줬다. 미국 이외에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일본이다. 이런 나라가 여차하면 국채를 팔겠다고 언급한 것은 지난 70년간 일본이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이야기였다. 물론 일본 재무상이 ‘발언이 지나쳤다’고 물러섰지만, 협상 카드를 슬쩍 내비친 셈이다.”

“이시바의 일본과 한국 기업은 같은 방향 바라봐”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공격에 한국과 일본이 공동 대응할 수 있지 않으냐는 구상이 나온다.

“한국과 국교 정상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룩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일본 구주류들은 (기본적으로) 반성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치의 주류가 바뀌면서 삐걱거렸다. 다만 트럼프 관세 앞에서 한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상당히 유사하다. 이제 과거사 문제나 안보 협력은 둘째 치고, 당장 이 저성장 구조를 헤쳐나가는 데 있어서 공조할 부분은 해야된다. 한국도 자동차 관세는 어떻게든 폐지하거나 피해야 한다. 한국도 자동차산업이 주력 산업 중 하나이고, 고용 창출력이 가장 높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시바 내각이 최근 아주 재미난 표현을 썼다. 일본 뉴라이트 정권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전략’이라는 단어를 뺐다. 그 대신 ‘인도·태평양을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장으로 만들어야 된다’며 톤 다운시켰다. 연립정부인 공명당 당수를 중국에 급파하기도 했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다시 정립하겠다는 포지션이고, 실제 일본 기업인들이 대거 중국에 갔다. 중국과 일본 경제가 함께 가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에서 한국도 무심할 순 없겠다.

“우리나라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3월 6년 만에 재개된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3국 간 자유무역 수호를 강조했다. 3국 간 FTA 추진 움직임도 보였다. 현대자동차도 ‘인 차이나 포 글로벌’이라며 오히려 지금은 중국에 투자할 때임을 천명했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 60%를 점유하는 중국 기업과 경쟁하고, 부품업체와 협력하면서 중국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해석이 가능하겠다.

“이제 (탄핵으로) 윤석열 정부의 탈중국,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풀려났다. 그렇기에 우리 기업인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이런 모습은 일본과 한국이 굉장히 유사하다. 앞으로두 나라가 경제 부문에서 공조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후보 캠프에 일본 전문가가 안 보인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지 않다. 진보 쪽에도 일본 전문가가 당연히 포진해 있다. 더군다나 이 후보는 이념 중심의 진영 외교가 아니라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내걸었다. 이 후보 성향 자체가 실용적이라서 한·일 관계도 과거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식의 외교는 안 할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지금은 경제위기 돌파가 초유의 국가 어젠다가 됐기에 일본과 협력하려는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국민은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죽창가와 노 재팬을 강렬히 기억하고 있다.

“왜 죽창가, 토착왜구 같은 말들이 나왔는가. 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 규제를 했기 때문이었다. 한·일 수교 후 60년의 불문율은 ‘정경분리 원칙’이었다. 가령 박정희 정권 시절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했지만, 그 보복으로 경제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숱한 역사, 영토 문제가 있었지만 일관됐다. 하지만 아베의 일본은 화이트리스트라는 수출 규제를 들고 나왔다. 경제 전쟁의 선포였다. 이에 대한 강한 반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 말들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불문율을 깬 일본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 (정치공학적으로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반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관점은 이제 양국의 대등한 경제 관계를 고려하면 시대에 맞지 않는다.”

“‘국화와 칼’은 여전히 유효”

윤 정부가 그토록 일본과의 관계에 공을 들였음에도, 네이버-라인 사태가 터진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본이 친절하고 착하고 평화를 사랑하지만, 한번 돌변하면 최악의 전범, 침략 국가의 본성을 드러낸다.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제목처럼) ‘국화와 칼’이 맞다. 이 선량한 국민이 광기에 휩싸이면 대놓고 난징 대학살도 저지른다. 이런 이중적 면모를 봐야 하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기본적 시각이다. 네이버-라인 사태가 터지기 전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사도 광산 등에서 양보를 해줬다. 그러면 일본도 선의로 대응해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치밀한 준비 속에서 비수를 꺼냈다. 네이버-라인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가 강력히 나서야 했다. 하지만 윤 정부는 설마 일본이 라인을 탈취하겠느냐며 안이하게 봤다. 그러다 거의 탈취 직전까지 갔고, 그제야 윤 정부도 여론에 떠밀려 라인의 지분 조정은 안 된다고 나섰다. 하지만 일본이 완전히 포기했다고 보면 안 된다.”

김 교수는 “소니를 망가뜨린 건 삼성전자가 아니라 일본 정부”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 기술력을 상실한 삼성전자가 소니의 처지다. 새로 출범하는 한국 정부는 어떻게 삼성전자를 도울 수 있을까?

“미국이 중국의 굴기를 막아주니, 삼성전자 반도체가 시간을 벌었다고 해석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이제 결과를 알지 않나. 중국의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기업들은 미·중 패권전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죽기 살기로 발버둥 치고 있다. 그 사이 우리의 산업 경쟁력은 쇠퇴했다. 소니가 위기에 빠질 때 구조와 지금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이미 늦었지만, 전략부터 새로 짜야 한다. ‘트럼프가 중국을 눌러줄 것’이라는 해석을 반복한다면 삼성전자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김영준 월간중앙 취재팀장 kim.youngjoon1@joongang.co.kr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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