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아래에서 미국의 동맹 관계는 경제적 기여와 안보 보상이 맞물려 작동하는 ‘거래형 교환동맹’ 구조로 재편되고 있으며 한미 동맹은 그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7월 말 타결되고 지난달 말 세부 사항이 합의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결국 한국은 총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대미 투자 의무를 떠안게 됐다.
투자금은 10년에 걸쳐 분할 집행하기로 합의했으나 투자처 결정권은 미국에 있고 한국은 사실상 자금을 납부하는 역할에 그친다. 더욱이 한국이 미국에 투자한 자본의 수익 회수 여부가 불투명해 손실 위험을 한국이 부담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협상은 한국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막대한 경제적 기여를 하도록 설계된 불공정한 합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기여가 결국 미국의 안보 보상으로 이어진 것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 물론 한국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이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핵추진잠수함 협력을 직접적으로 끌어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경제적 기여가 안보 협력의 정치적 토양을 마련했을 가능성은 크다. 한미 ‘공동 설명 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서 미국은 핵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능력을 활용해 확장 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는데 이는 한국의 경제적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제 미국의 안보공약이 ‘유료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관세 협상이 타결되기 전인 9월 이미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까지 증액하기로 선제적으로 결정했고 늘어난 국방 예산을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와 주한미군 지원에 투입하기로 했다. 최근 엘브리지 콜비 미국 전쟁부 정책 차관은 이 같은 조치를 높이 평가하며 한국을 ‘모범 동맹’이라고까지 칭했다.
결국 한국의 대미 안보 기여와 대규모 미국산 무기 구매는 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한국은 관세 협상에서 그나마 ‘완전 굴복’이 아닌 ‘부분 선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올 7월 1차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국방비를 GDP 대비 3.8% 수준까지 올리라는 방안을 검토했으며 한국은 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동맹의 역사를 돌아보면 경제협력이 군사 협력을 촉진하고 군사 협력이 다시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들어 동맹의 특징은 이와 결이 매우 다르다. 동맹 파트너의 경제적 기여가 안보 보상으로, 안보협력이 다시 경제 보상으로 이어지는 ‘쌍끌이 메커니즘’이 거래적 관계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동맹의 가치를 ‘경제·안보 패키지’로 평가한다. 동맹국의 재정 기여, 투자 규모, 무기 구매에 따라 안보 보장 수준을 조정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동맹국이 얼마나 방위 비용을 분담하고, 미국산 첨단무기 구매나 공동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경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가 동맹의 격(格)과 위상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경제와 안보의 교환을 기반으로 한 트럼프식 거래형 동맹 구도의 실험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은 경제협력과 안보 보상이 상호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적 양보는 단기적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국의 안보공약을 유지·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는 투자로 관리돼야 한다.
아울러 기술 공동 개발과 국방산업 연계를 통해 동맹 기여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와 공급망 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경제와 안보의 상호 교환 관계를 선순환 구조로 관리함으로써 트럼프식 동맹 재편 구도 속에서도 한국은 실리를 지키고 전략적 자율성의 기반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