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후 심리상담사/칼럼니스트/논설위원
오랜시간 과거 트라우마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30대 청년이 상담실에 찾아와 하루빨리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다고 했다. 트라우마란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다. 외상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돼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충격적인 사건은 한 번으로도 정신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정신적 트라우마 또는 정신적 외상으로 불리는 이런 손상은 즉시 혹은 수년에 걸쳐 나타날 수 있다. 불신, 공격, 불면, 불안 등의 신체 통증을 느끼며 정신적 피로감에 시달리게 되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 국민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세월호 사건, 이태원 참사, 계엄, 탄핵 등으로 다수의 국민들이 ‘대통령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집단 트라우마는 이념 갈등과 양극화, 정치 불신, 냉소주의를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엄마가 자신을 버린 기억, 아빠가 자신을 힘들게 했던 기억, 15살에 가장이 돼 10년 동안 일한 돈을 가족을 위해 써야 했던 기억, 아빠의 외도 등의 아픈 기억에 힘들어 하는 내담자들이 있다. 이들은 20~30년이 지나도 어릴 적 상처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작 상처를 주었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성인이 된 자식은 여전히 과거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폭행이나 심각한 사건 사고 등의 끔찍한 경험은 분노와 불안감으로 지속해서 자신을 괴롭힌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으면 성격이 예민해지고 부정적이게 돼 쉽게 치유되지 않는 고통으로 자리잡는다. 더 나아가서는 예민한 사춘기에 상처를 많이 받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사람마다 상처의 깊이는 다르지만 조금이라도 트라우마를 극복해나가기 위한 방법으로는 첫째,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의학적인 질병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둘째,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방해를 받을 경우 꾸준한 약물치료와 심리 상담을 병행한다. 셋째, 나는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을 겪고 있을 뿐, 나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넷째,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책하지 않는다. 다섯째, 지금의 나를 인식하고 마음의 유연성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여섯째,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 현재로 돌아와 오롯이 이 순간을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지금의 순간이다. 물론 각자의 트라우마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 현재에서 즐거움을 찾아 즐겨야 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과거가 나에게 주었던 상처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 하여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고 더 즐겁게 이겨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갈 수 없다. 우리는 매일 현재라는 인생의 선물을 받고 있으며 그 선물 상자에서 무엇을 꺼낼지는 우리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