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땐 관세 각개격파, 이젠 융단폭격…'죄수 딜레마' 빠진 동맹국

2025-02-1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장 아름다운 단어”(지난해 10월 선거유세)라고 찬양한 관세를 본격적으로 무기화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한국을 비롯한 주요 철강 생산국의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다.

스스로도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출혈 경쟁인 만큼 상대국들이 연합해 대응할 경우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국가라도 트럼프를 설득해 관세 면제에 성공할 경우 여타 국가는 가격 경쟁력에 밀려 직격타를 맞는 ‘관세 오징어 게임’이다. 1기 때 각개격파 양상을 보였던 트럼프가 2기에서는 융단폭격에 나서자 한국, 일본, 호주, 캐나다, 영국 등 주요 철강 수출국들은 누가 가장 먼저 트럼프의 마음을 돌려 관세의 덫을 벗어날지 고민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

공멸 향해가는 ‘乙의 게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유럽연합(EU) 측과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했지만 “양측간 무역 확대·다각화 노력을 기울인다” 등 원론적 수준의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탄핵 정국인 한국은 이같은 연합 대응을 위한 뚜렷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 일본은 12일 철강 등 관세 부과에서 일본 기업을 제외하도록 미 측에 요청했다고 밝히는 등 단독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각자도생 기류는 기본적으로 강공으로 상대 진영을 교란한 뒤 “대안을 가져오라”며 경쟁을 붙이는 트럼프의 접근법에서 기인한다. 이와 관련, 트로이 스탠거론 윌슨센터 한국 역사·공공정책 연구센터 국장은 12일(현지시간) 브루킹스연구소가 진행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안보와 달리 경제 분야에서는 한·미·일 협력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그는 "트럼프 측은 미국이 동맹국으로부터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경제 측면에서 진정한 연합 전선 구축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교 소식통은 “다른 나라들은 관세를 맞고 우리만 트럼프와 협상을 해서 빠져나가는 게 베스트 시나리오”라며 “동병상련끼리 똘똘 뭉치면 협상력이 올라가지만, 단일대오가 형성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내가 제일 잘 알아” 말릴 이 없어

‘대통령 2회차’인 트럼프의 관세에 대한 맹신은 더 깊어졌지만, 그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기제는 사실상 거의 사라진 것도 문제다.

트럼프 1기 때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 이른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으로 불리는 외교·안보 전문 관료들이 동맹과 우방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설정하도록 역할을 했다. 일례로 1기 시절 참모였던 게리 콘 백악관 전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트럼프의 책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파기하려는 문서를 발견한 뒤 빼돌렸다. (밥 우드워드 『공포(Fear): 백악관 안의 트럼프』)

하지만 2기에선 충성파 중심 인선으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사실상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자신이 철저히 ‘예스맨’으로 채운 내각조차 건너뛰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트럼프가 캐나다, 멕시코 등에 관세를 부과할 때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 최측근조차 관련 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미국에서 관세 정책을 담당하는 무역대표부(USTR) 대표(후보자 제이미슨 그리어)에 대한 인준 절차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관세 폭탄을 맞고도 트럼프 본인을 제외하면 행정부 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도 불분명하며, 트럼프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참모가 과연 있는지도 장담할 수 없다.

‘트럼프 입맛’ 돋굴 카드 부심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의 관세 폭격과 관련해 “더 이상 논리 싸움이 아니다”라며 “트럼프가 과연 무엇에 꽂혔는지 파악하는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국에 대한 트럼프의 인식은 "한국은 방위비를 덜 내는 부자 나라" 등 비교적 단순명료하게 정립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트럼프는 지난 10일 철강 관세를 발표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통화한 뒤 "호주는 (미국산) 비행기를 많이 산다. 미국은 호주에 무역 흑자를 보고 있다"며 돌연 호주에 관세 면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에서 ‘득을 보고 있는 요소’에 대해 트럼프에게 신속하게 입력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한국이 중국산 철강을 재가공해 우회 수출하는 '중간 기착지'라는 부정적 인식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 조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투자 가시화"…네트워크 활성화 필요

전문가들은 당장 가시적인 카드 중 하나로 철강 기업의 구체적인 대미 투자 약속을 꼽는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국제통상경제안보연구부 교수는 “결국 국내 제조업을 살리고자 하는 트럼프의 니즈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철강 업체의 미국 투자를 가시화하면서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최대한 면제를 받아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발 관세 폭풍 속에서는 정상 간 담판조차 힘을 쓰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를 만난 지 사흘 만에 일본까지 포함한 철강 관세를 때렸고, 13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마주 앉기 직전에 백악관은 상호 관세 발표 방침을 확인했다.

기존 외교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불확실한 국면에서 한국의 정상외교 공백에 스스로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고 이른바 ‘동병상련’ 국가들과 정보 공유를 활성화해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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