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인의 생활상 바위에 새긴 울주 반구대·천전리 유적
장마철 침수 문제 해결해야…“수위 못 낮추면 멸실 우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지난 12일(현지시간) 결정된 울산 울주군의 반구천 암각화는 선사시대인들의 삶과 꿈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울주군 반구천(대곡천)에 자리하고 있는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971년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 상류의 지류인 대곡천의 절벽 아랫부분 바위에 새겨졌다. 너비 약 8m, 높이 약 4.5m 규모의 중심 암면과 10곳의 주변 암면에 312점 정도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고래와 같은 바다동물과 호랑이·사슴 등 육지동물, 동물 사냥 모습 등이 상세히 표현되어 있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 사냥 과정에 대한 구체적 묘사 때문에 세계 선사미술학계에 잘 알려진 유적이다. 고래 종류까지 확인할 수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 작살에 맞은 고래, 사냥해서 배에 묶어 끌고 가는 장면 등을 세세하게 묘사했다. 노르웨이 알타의 암각화에도 선사시대 고래 사냥이 담겼지만 반구대 암각화처럼 고래 사냥의 모든 과정이 표현되어 있진 않다. 또 해양 수렵과 육지 수렵이 한 화면에 겹쳐서 나타나는 것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 발견 1년 전인 1970년 먼저 존재가 알려졌다. 너비 약 9.8m, 높이 약 2.7m 규모의 중심 암면과 4곳의 주변 암면에 620여점의 그림과 문자가 새겨져 있다.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쳐 신라시대까지 수천년에 걸쳐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앞 작품을 인지해가며 새긴 결과 현재와 같은 구도를 갖게 되었다. 그중에는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 시기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도 있어 고대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도 여겨진다.
두 암각화는 옛사람들이 바위에 남긴 삶의 흔적이자 기록으로서 가치가 크다. 하지만 장마철만 되면 물에 잠기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비운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세워진 이후 해마다 장마철이면 물에 잠기고 또 급속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에도 암각화는 연평균 42일간 물에 잠긴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암각화 훼손을 막기 위해 사연댐 수위 조절, 임시 제방 설치, 임시 물막이 설치 등 여러 안이 나왔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2021년 정부가 반구대 암각화 발견 50년을 맞아 사연댐에 15m 폭의 수문 3개를 설치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으며 전기를 맞았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수문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운영하면 울산시의 식수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대체 수자원 확보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등재 결정과 함께 “사연댐 공사의 진척 사항을 세계유산센터에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개발 계획에 대해 세계유산센터에 알릴 것”을 권고 사항에 포함했다.
전호태 울산대 명예교수는 “수위를 낮추지 못하면 암각화 멸실로 이어질 수 있으니 수문 설치를 안 할 수 없다”며 “이번 세계유산 등재가 정부와 지자체의 전향적인 협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 기능부터 보존·관리, 콘텐츠 활용까지 통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