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의 랜드마크 조성 사업이 또 다른 조형물 실패로 남지 않으려면

2024-10-23

[울산저널]이종호 기자= 22일 화요 토론은 '랜드마크와 울산의 도시관리 전략'을 주제로 열렸다. 발제에 나선 성인수 울산대 명예교수는 "랜드마크는 한 국가나 도시의 얼굴이 되기도 하지만 큰 예산만 낭비한 채 흉물로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미국 모뉴먼트 밸리와 4개 주가 만나는 4코너, 아프라카의 바오밥나무, 모스크바 성 바살리 대성당, 요르단 고대 유적 페트라, 우리나라의 성황당 등이 대표적 랜드마크다.

미국의 도시기획자 캐빈 엔드류 린치에 따르면 도시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경로, 경계, 지역, 결절점과 랜드마크로 이뤄져 있다.

경로(path)는 거리, 보도, 교통로, 운하, 철도 같은 관찰자가 움직이는 통로다. 길은 도시의 다른 부분을 연결해 이동과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뉴욕의 브로드웨이가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건 도시 그리드를 가로질러 독특한 교차로와 활기찬 활동 공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루브르박물관과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개선문, 라데팡스 미래 개선문을 연결하는 파리의 일직선 도로와 백악관, 재퍼슨 기념관을 양 옆으로 미 국회의사당, 워싱턴 기념탑, 내셔널 몰, 링컨 기념관을 한 줄로 잇는 워싱턴 DC 중심지가 도시를 대표하는 '경로'들이다.

뉴욕 슬리피홀로에서 시작해 맨해튼 남쪽 끝까지 이어지는 브로드웨이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동쪽 슈프레강 박물관섬을 건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있는 인넨스타트 공원, 베를린 텔레비전탑을 지나는 베를린 중심가도 마찬가지다.

김정호가 만든 수선전도(首善全圖)에도 경복궁과 지금의 종로가 뚜렷이 그려져 있다.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 거리 위로 지나던 화물 철도에 건설된 하이라인도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 길이 됐다.

경계(edge)는 통로가 아닌 선형 장애물이다. 해변이나 벽, 끊어진 철도, 도시 발전이 멈춘 곳 등이다. 독일 타우버 강가에 있는 로텐부르그와 맨해튼 빌딩숲, 양지천에서 보는 삼성 타워팰리스가 도시의 경계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캐빈 앤드류 린치는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같은 특정 용도로 구분되거나 문화와 사회 정체성이 뚜렷한 곳을 지역(districts)으로 분류하고, 주요 교차로나 기차역, 광장 등 도시의 전략적 장소를 결절점(node)로 분류했다.

브로드웨이 길목에 있는 타임스퀘어나 1987년 7월 이한열 열사 추모를 위해 모인 서울시청 광장, 모스크바 붉은 광장,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등이 전 세계에서 유명한 노드들이다.

랜드마크는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고, 눈에 띄는 독특한 기능이 있으며, 역사적 문화적 기능적 중요성이 있다. 파리의 에펠탑은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도시 자체를 상징하는 세계적 랜드마크다.

성인수 교수는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블랙힐즈 러쉬모어산 조각상(큰바위 얼굴)과 인도 구자라트주에 있는 182미터 높이의 '통일의 조각상'처럼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랜드마크도 있지만 중국 후베이성 초대형 관우 청동조각상과 후난성 마오쩌둥 조각상, 하이난성 남산관음상 등 문화 랜드마크를 남발하면서 자연경관을 훼손한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울산시 김두겸 행정부가 추진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250억 원짜리 40미터 기업인 흉상에 이어 살티 공소 세계 최대 성경책, 대왕암공원 앞바다 부유식 불상 등 민선 8기 울산시의 랜드마크 사랑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성인수 교수는 울산시의 랜드마크 조성 사업이 또 다른 조형물 실패 사례로 남지 않으려면 진짜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도시에 대한 철학과 도시관리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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