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K방산의 보안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옛 국방부) 장관이 그제(4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재래식 전력 증강을 통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SCM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재래식 방어는 한국이 주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에 전작권을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 한·미는 이를 위한 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산 무기 세계에서 각광
북은 최첨단 유사 무기 공개
북, K방산 전방위 해킹 시도
사이버 보안 체계 확립 시급

과거 주한미군이 없으면 한국군의 전쟁 수행 능력이 불가능하다는 평가에서 이제는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수준까지 방향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과 함께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방산을 활용한 한국군의 현대화와 전력 강화 덕분이라 볼 수 있다. 실제 K방산은 이제 세계 무기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름이 됐다. K-9 자주포, K2전차, 천궁 미사일 등이 이미 중동과 폴란드 등에 수출돼 명성을 떨치고 있고, 우리 기술로 만든 KF-21전투기도 수출 얘기가 오가고 있다. 한국은 세계 7번째로 초음속 순항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며 방산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북한도 재래식 무기 현대화 박차
북한은 지난달 10일 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화성-20형을 비롯해 극초음속 단거리 미사일, 무인공격기 발사대 등 나름 첨단 무기를 선보였다. 북한은 2년 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정전협정체결일) 열병식에선 무인정찰기 샛별4와 무인공격기 샛별9를 공개했다. 각각 미국의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와 MQ-9 무인공격기(리퍼)와 흡사한 모습이다. 북한이 공개한 샛별4와 샛별9의 실제 성능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세계 최고수준의 무기를 흉내 낸다는 사실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북한이 수시로 시험 발사하고 있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도 우리 안보에 위협요소다. 핵무기 못지않게 북한이 재래식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경제난과 자원이 부족한 북한이 핵 개발에 올인하며 ‘한방’을 준비해 놓고 재래식 무기 현대화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초 기술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는 북한이 어떻게 이런 첨단 무기 기술을 손에 넣었느냐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 옛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이집트에서 들여가 역설계 과정을 거쳐 미사일 개발에 활용하는 수준이었다. 아직 첨단 무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할만한 기술 축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상정해 볼 수 있지만, 어느 나라든 우방국에도 첨단 무기 개발 기술을 넘기는 데엔 난색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북, 해킹으로 무기 개발?
무기 기술은 하루아침에 도약할 수 없다. 현대 과학의 총체가 무기다. 그렇다보니 북한이 최근 공개한 무기들이 미국이나 한국의 정부나 업체를 해킹해 설계도나 기술을 확보한 뒤 자체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샛별4·9의 외형이 미국산과 완전히 흡사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 국내 방산업체는 북한이나 경쟁국들의 해킹 목표가 되고 있고, 이미 상당수의 기술이 유출된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북한은 2014~2016년 사이 국내 방산 대기업에서 4만여 건의 자료를 탈취했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는 잠수함과 이지스함 설계도, 전투체계 관련 기밀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엔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서 원자력 기술 관련 자료까지 공격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불리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북한이 배후인 ‘김수키’에 해킹당해 KF-21 전투기와 수리온 헬기 기술을 유출당했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강선영 의원실이 올해 국정감사 때 각 군에서 집계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군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은 지난해 1만4000여 건을 넘어섰다. 올해 8월까지 군이 받은 사이버 공격만 총 1만2368건에 달한다. 군을 겨냥한 외부의 사이버 공격은 2020년 1만2678건, 2021년 1만1621건, 2022년 9048건, 2023년 1만3514건, 2024년 1만4419건으로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북한은 단순히 홈페이지 공격이나 메일을 통한 악성코드 살포를 넘어 본인 인증 소프트웨어까지 해킹하고 있다. 이른바 ‘공급망 해킹(Supply Chain Attack)’이다. 소프트웨어·하드웨어·서비스의 개발과 배포 과정 전체를 장악해 최종 시스템을 뚫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해킹으로 어떤 기술과 자료가 넘어갔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하는 북한의 무기기술 탈취
기술의 확산은 동시에 위험의 확산이다. 첨단무기가 복제되거나, 심지어 적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라크에 수출된 국산 소총이 IS 무장세력에게 넘어 갔던 일을 경고로 인식했어야 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판매된 무기 또는 관련 기술이 북한으로 새어나갈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미국은 동맹인 한국에 무기를 판매할 경우에도 민감한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부품을 뜯어보지 못하도록 계약단계에서 못을 박는다.
자체 기술이 부족한 북한은 기술 탈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2015년에 선을 보인 300㎜ 방사포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중국에서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설계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물론 중국 측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무단으로 가져가는 식이었다. 정보원이나 개인네트워크를 통한 설계도면 획득이 과거의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기술 탈취가 일반화돼 있다. 북한은 초등학교(소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컴퓨터에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집중교육을 한다. 일반학생들은 듣기에도 생소한 도스(DOS)부터 시작해 프로그래밍, 코딩 등 컴퓨터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습득시킨다. 영재학교인 제1중학교를 거쳐 김책공대 등에서 고급 기술을 가르치고, 필요할 경우 중국 베이징이나 선양 등에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이들이 사이버 망에서 가상자산이나 군에서 필요한 설계도와 기술 탈취에 나서는 것이다. 보안 업체인 ‘지니언스 시큐리티 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19년 중반 러시아의 3.5세대 전차인 T-14 등을 개발·생산하는 우랄바곤자보드의 설계 도면을 해킹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5위 군사력? 자만은 금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5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국방비가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1.4배에 달한다는 근거도 빼놓지 않는다. 정부는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늘리겠다면서 전작권을 되찾아오겠다고 한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도움 없이 전쟁 수행 자체가 불가능했던 한국이 세계 5위권에 들었다는 통계는 반길 일이다. 그렇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건 단순한 수치에 불과하다. 올해 국방예산 61조2469억원 중 전력유지 예산은 18조491억원에 불과하다. 방위력 개선비도 17조8462억원이다. 전력유지와 무기 도입예산이 35조8953억원으로 전체 국방비의 58.6% 수준이다. 국방비 총액이 아니라 증강되는 전투력이 실제 전쟁에서 발휘될 수 있는지, 전쟁 수행을 위한 물자가 어느 정도로 구비돼 있는지 촘촘히 따져보는 게 우선이다.

겉보기 전력만 늘어난다고 안보가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북한이 사이버 영역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전력이나 K방산의 위력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북한을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북한에 넘어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다. 안보에선 모든 가능성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한순간의 방심이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제 방산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야 하는 게 발등의 불이 됐다. 사이버 보안 체계가 바로 그 출발점이다. 국방 분야는 군이 알아서 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에만 보안을 맡겨선 한계가 있다는 판단으로, 안보기관(샤바크)이 주도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협업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이스라엘의 경험을 참고할 만하다. 우리의 방산 기술을 지키는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늘의 성취는 내일 적의 무기가 돼 돌아올 것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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