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섬유업계, 떨어진 명예·공정성 회복 길 열어야”

2024-12-17

대구 ‘다이텍·패션진흥원 비리’ 관련 인사 줄줄이 유죄

섬유관련 예산 알고 사업 진행

진흥원 만들어 다이텍과 공모

용역비 빼돌리고 재물 횡령도

국회의원 비서관 등에 실형

업계 내에서도 규탄 목소리

“조직 윤리·법에 어긋남 확인”

해당 구성원 투명한 심의 촉구

‘스스로의 정화’ 이룰지 관심

다이텍, 市와 갈등 중심 ‘후문’

대구 섬유업계에서 뇌물수수와 배임·횡령 등에 연루된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경기 침체와 대구시와의 불화 등 업계 내 악재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뢰를 잃은 전현직 인사들에 대한 규탄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재판으로 홍준표 대구시장이 요청한 ‘섬유업계 내 암적인 존재 해결’과 ‘업계 정화’의 포문을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섬유업계-정치권 얽힌 1심 재판서 7명 ‘유죄’

지난 13일 섬유업계와 정치권이 얽힌 1심 재판에서 피고인 9명 중 7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종길)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김희국 전 국회의원 비서관 A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2억5천만원, 추징금 383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한국패션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을 설립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A씨와 진흥원 전 이사장 B씨, 지인 C씨는 함께 진흥원을 차린 후 다이텍연구원(이하 다이텍) 현직 단장 D씨와 공모해 사업 이득을 나누고 허위 용역을 받는 등 다이텍으로부터 2억원 이상의 재산상 이득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뇌물수수와 배임, 성폭력처벌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는 징역 7년과 벌금 2억5천만원, 추징금 364만원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함께 진흥원을 차린 후 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C씨는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다이텍의 실질적인 총괄 인사인 D씨에게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나머지 죄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 다이텍 이사장과 전 염색공단 이사장은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뇌물공여에 가담한 모 다이텍 본부장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다만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희국 전 국회의원과 그의 후원회 전 회계책임자는 무죄로 판결났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15년 5월 다이텍 직원 48명으로부터 480만원,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이하 염색공단) 이사 5명으로부터 500만원 등 총 98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당시 김 전 의원의 직무에 노후산단 재생 사업 등이 포함된 점을 미뤄 해당 정치자금의 뇌물성이 인정된다고 봤으나 김 전 의원이 후원금에 대해 인식했거나 공모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단은 뒷돈 통로였던 ‘진흥원’

판결문과 내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발단은 뒷돈의 통로였던 ‘진흥원’이 문제가 됐다.

지난 2014년 11월 김 전 의원의 비서관이었던 A씨는 예산안 조정을 앞두고 지인 B씨와 상의해 섬유 관련 3가지 사업을 예산안에 포함시켜 자신들이 직접 사업을 진행키로 했다. 이들은 12월 예산이 확정되자 사업을 수주할 목적으로 진흥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다이텍 단장인 D씨는 이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예산을 김 의원실에서 확보한 것을 알고 2015년 1월 지인을 통해 A씨를 만났다. 한 자리에 모인 A씨와 B씨, D씨는 ‘다이텍이 사업을 주관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진흥원을 참여기관으로 지정해 사업비 30%를 배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사업신청 기간 만료일인 2월까지 진흥원이 설립 인가를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자 이들은 계획을 바꿔 허위 용역비 형식으로 ‘사업 수주 대가’를 전달받기로 했다. 다이텍은 2015년 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0회에 걸쳐 약 2억700만원을 진흥원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들은 ‘K-패션 사업’ 세부 사업인 ‘한베마켓행사’를 진행하면서 용역비 약 7천900만원을 빼돌렸다. 용역비보다 실제 지출된 사업비가 1억1천600만원 가까이 차이 났지만 B씨와 C씨의 요청에 따라 3천700만원 가량만 삭감하도록 했으며 같은 행사에서 또다른 용역을 체결한 후 용역비 3천만원을 C씨의 계좌로 반환받았다. 2016년 9월 ‘대구국제패션문화마켓행사’에서는 진흥원 명의로 C씨가 운영하는 업체와 납품 계약을 맺고 실제 납품 금액 69만3천원이 아닌 950만원을 지급하는 등 재물을 횡령했다.

이밖에 B씨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3명에게 1천600만원 상당의 인건비를 지급하거나 ‘페이백’이 되는 업체와 용역을 체결한 후 법인카드와 현금을 받았으며 진흥원 사무실에서 면담을 핑계로 휴대용 캠코더를 이용해 여직원의 신체를 무단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2016년 문을 연 진흥원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2년 전인 2019년 문을 닫았다. 약 2년 반의 짧은 기간 운영에도 수억원의 뇌물과 횡령이 벌어진 것을 두고 애초부터 ‘뒷돈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설립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섬유업계 인사가 아닌 외부인에게 업계 자금이 흘러간 것에도 시선이 곱지 않다.

◇들끓는 내부 정화 목소리…‘카르텔’ 타파될까

다이텍 전현직 인사들이 신뢰를 잃으면서 업계 내에서도 규탄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다이텍을 두고 ‘카르텔’ 논란이 안팎으로 제기됐던 만큼 이번 판결이 업계 내 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다이텍유니온크루지부는 지난 16일 성명서를 내고 “정치자금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해당 구성원의 행위가 조직 윤리와 법에 어긋남을 확인했다”며 “이는 우리 조직이 공공의 연구기관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으로 사측에서 이를 방임할 시 노조는 이를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구성원에 대해 연구원 내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직위 해제 및 징계 여부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의할 것을 촉구한다”며 “조직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과 떨어진 명예와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이텍이 위치한 염색공단에서도 노조의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곽종훈 공공운수노조 염색공단지부장은 “섬유업계 문제가 하루빨리 원상복귀되려면 다이텍 집행부에서 사태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 시장이 섬유사업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업계 스스로의 정화’가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도 관심이 쏠린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최근 섬유 관련 인사들이 다이텍으로 몰리면서 ‘카르텔’이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다이텍은 지난해 밀라노 출장 관련 홍 시장과 갈등이 있었던 섬유업체 중 유일하게 이사장이 바뀌지 않은 업체로 시와 업계 갈등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후문이 돌았다. 당시 함께 갈등이 있었던 섬유업계 일부 인사가 현재 다이텍 이사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더욱 불거졌다. 과거 대구시 섬유패션과장이 염색공단 임원으로 가려 했으나 공단 이사장이 바뀐 후 다이텍에 취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특히 진흥원의 농단에 다이텍을 끌어들였던 장본인인 D단장에 대한 내외부 논란이 지속된 바 있다. D씨는 앞서 재판에 기소되면서 보직이 해임됐으나 지난해 5월 다시 복직했다. 지난 10일에는 대구경실련에 “섬유바닥을 시끄럽게 했던 D단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로 이사진이 대거 교체됐다”며 “원장직에 내정된 인물 또한 단장의 지인으로 추정된다”는 투서가 전달되기도 했다.

이런 논란과 의혹 속에서도 다이텍은 미온적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다이텍 관계자는 “재판은 개인이 걸린 문제로 연구원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지금 상황으로는 항소 여부가 결정이 나야 회사 입장이 정리될 것 같다. 아직은 어떤 절차를 밟을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D단장의 복직과 관련해서는 “당시 보직을 해임할 때도, 복직할 때도 결정은 원장 또는 인사위원회에서 정리했던 것”이라며 “해임 땐 당시 원장이 판단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사안에 대한 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묻기에 입장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류예지기자 ry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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