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언어의 구차함

2025-01-14

구차하다는 말에 사용되는 ‘구(苟)’는 풀이름이었는데 음을 빌려 ‘진실로’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글자의 더 이른 자형인 갑골문을 보면 머리 장식을 한 사람이 꿇어앉은 모양이다. 양을 토템으로 섬기던 종족이 상나라에 ‘진정으로’ 굴복하는 것을 뜻하는 데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구차해진 모습을 담은 글자다.

참을 수 없이 구차한 언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제 살길 찾기 위해 고심해 내는 교묘한 수사와 논리들이 난무하고, 점잖은 체 양비론을 펼치는 이들과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언론에 의해 본질은 더욱 흐려진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본인 말과는 정반대로 대통령은 경찰과 법원, 헌법재판소마저 무시하며 기괴한 말들을 내고 있고, 그로 인해 지지 세력이 더 결집하는 현상마저 보인다.

그러나 서로 동의하기 힘든 논란의 지점들을 하나하나 걷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헌법에 반하고 계엄법에도 어긋나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 병력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을 온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사전 준비 과정은 물론 심지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이후에도 군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의혹이 국회 질의와 검찰 조사로 강하게 제기되었다. 어느새 구차한 말들에 겹겹이 덮여버린 모양새라서 새삼 복기가 필요할 지경에 이르렀다.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법치의 질서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 여기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는 데에서 정치가 시작된다고 했다. 말이 구차해지는 것은 이름이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법치의 질서를 수호해야 마땅하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라면 모든 책임의 정점에서 본인보다 국가의 안위를 우선해야 마땅하다. 이름이 실상에 맞지 않으니 말이 구차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는 거짓말을 남발하게 된다. 공자는 어긋난 이름과 구차한 말이 질서를 어지럽혀서 형법 집행이 혼란스러워지며, 그 결과 백성들이 자기 손발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진다고 했다. 2500여년 전 봉건시대의 공자가 우려한 모습을, 21세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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