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덮친 화마(火魔)로 모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마지막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야 했던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졸업식’이 열린다. 경남 통영시 제석초등학교 이야기다.
‘통영국제음악당’서 열리는 사상 첫 졸업식
최근 통영시는 “2월 17일로 예정된 통영 제석초 2025년 졸업식을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초등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 시설로, 문화·예술계 전문가와 외신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곳이다.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서울에서 5시간이라는 이동 거리를 감수해서라도 찾고 싶은 극장”(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클럽발코니 편집장, 2023년), “뛰어난 음향을 가진 아름다운 공연장과, 바다가 보이는 대기실은 정말 잊지 못한다”(소프라노 임선혜, 2017년), “바로 앞에는 바다가 있고 멋들어진 지붕 모양은 장 누벨이 루체른에 지은 콘서트홀과 닮았다”(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2016년) 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졸업식장 못 구한 초등생 위해 지역사회 나섰다
통영시와 통영국제음악재단은 졸업식 장소를 구하지 못한 제석초 졸업생 220여명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화재가 발생한 제석초의 복구 공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중순쯤, 시는 ‘졸업식이 걱정’이라는 학교 측 애로사항을 파악했다. 졸업식을 진행할 학교 체육관도 불에 타, 반별로 졸업식을 따로 치러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시는 고민 끝에 재단에 국제음악당을 졸업식 장소로 사용할 수 있는지, 무료 대관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 천영기 통영시장도 직접 재단에 전화 걸어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재단은 약 300만원의 대관료는 물론 전기요금 등 실비도 받지 않고 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을 대여해주기로 결정했다.
천 시장은 “예기치 않은 화재 피해로 그간 제석초 학생들이 겪은 많은 어려움을 위로하고 지역사회의 따뜻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정분 제석초 교장은 “우리 아이들에게 최고의 멋진 선물이 될 것 같다”며 학생과 학부모를 대신해 고마움을 전했다.
‘원인미상’ 화마에…학생 1100여명, 타 학교 더부살이
제석초는 앞서 지난해 3월 18일 화마를 겪었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이 약 2시간 만에 화재를 진압했지만 10대 여학생과 40대 학부모, 60대 환경미화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본관·급식소 건물과 자동차 27대가 불에 타면서 약 23억원(소방 추산)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교실 40여개 중 최소 15개가 완전히 불에 타고, 나머지 교실도 그을려 수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경찰·소방 등이 합동 감식을 벌였지만, 화재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화재 이후, 수업 장소를 잃은 1100여명의 제석초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학년 152명은 제석초 바로 옆 죽림초로 갔고, 2~6학년 986명은 아침마다 통학버스 25대를 타고 가깝게는 2.2㎞ 멀게는 7㎞ 이상 떨어진 학교로 원정 수업을 떠났다. 이 때문에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9개월 가까이 타 학교에서 사실상 ‘더부살이’를 해야 했다.
2월 말 복구공사 끝날 듯…1년 만에 ‘정상수업’
다행히 2·3·4학년 593명은 제석초 운동장에 모듈러 교실이 설치되면서 지난해 5월 학교로 돌아왔다. 모듈러 교실은 컨테이너 형태의 이동식 교사(校舍)로, 전문 제작업체인 ㈜엔알비와 ㈜대승엔지니어링이 지자체·교육당국과 업무 협약을 맺고 무상 제공했다.
5·6학년 384명은 제석초 복구공사가 일부 마무리되면서 지난달 12월에야 모교로 등교할 수 있었다. 이들 학생은 지난 한 해 대부분을 모교가 아닌 타 학교에서 지냈다.
학교 복구공사는 오는 2월 말 완료될 예정이다. 학교 측은 오는 3월 새 학기부터 모든 학생이 예전처럼 학교 본관 건물에서 정상 수업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불이 난 이후 1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