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SFS 포럼] AI 시대, 금융법도 특이점 도래…규제 틀 새판 짜야

2025-08-26

기조 발제 이후 이어진 제5차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토론 세션에서는 윤종원 KDI 초빙연구위원(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좌장으로,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금융 규제 체계와 금융 포용성 확대 방안이 논의됐다. 토론자들은 공통으로 금융법이 '특이점(싱귤래리티)'에 도달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정부의 인프라 투자와 데이터 활용 체계 개선 등 제도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는 “AI 기술 발전 속도와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사전 규제 형식으로 담아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금융법 체계 자체가 새롭게 쓰여야 하는 특이점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로 사전적으로 모든 위험을 규율하지만, 영미권은 서비스가 나온 뒤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이라며 “이대로라면 AI 경제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유재수 간사도 규제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는 “혁신이 주도되는 분야에서 지나치게 소비자 보호만 강조하다 보니 AI의 금융 접목이 어렵다”며 “규제기관도 단순히 막는 역할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혁신을 리드하는 주체로 인식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즉, 소비자 보호를 중시하되 혁신을 가로막지 않는 균형 잡힌 규제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은 “KB·신한 등 주요 금융사가 AI 내재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 망분리 규제, 신용정보법 등 제약으로 발전 속도가 더디다”며 “안전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규제를 어떻게 풀어 산업을 육성할지가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윤종원 KDI 초빙연구위원은 “AI는 혁신적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심각한 위험를 야기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면서 “기술 변화와 조화를 맞추어 규제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데이터 등 규제를 합리화할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AI 산업 발전을 위해 중국처럼 무방비로 안면 등 개인정보 수집이 허용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규제 전환 필요성도 강조됐다. 안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I와 블록체인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 위험이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등장하며 차원이 달라졌다”며 “현행 법제는 예측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막는 방식인데, AI는 사고를 미리 알 수 없고 사후 구제로도 대응이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적 보호 장치와 책임 경감 규정을 함께 도입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안 교수는 유럽연합(EU) 인공지능법을 사례로 들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법적 의무를 위반하면 손해와 인과관계를 추정해 소비자 구제를 쉽게 한다”면서 “반대로 기업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면 책임을 낮춰주는 조항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한국에는 이런 장치가 없어 기업은 불안하고, 소비자는 피해 구제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정부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윤종규 KB금융그룹 고문은 “AI시대에 맞는 효율적인 정부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관건인데, 민간이 해야 할 부분은 민간에 맡기되 정부는 에너지 전력·송배전 시설 같은 인프라 투자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차원의 자율적 해결을 장려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신관호 고려대학교 교수는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커졌고, 그 결과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면서 “실제로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민간의 역할이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침만 따르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민간이 자율적으로 보안이나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이어 신 교수는 “성숙한 책임의식을 통해 민간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 포용성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졌다. 윤 위원은 “금융은 경제의 역동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부의 재분배를 약화할 위험도 있다”며 “AI 도입 과정에서는 효율성뿐 아니라 금융 포용성을 어떻게 넓힐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도 금융 포용의 시각에서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디지털 기술 확산 속에서 금융 포용 문제는 주로 노령자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국한돼 논의됐지만, 실제로는 모든 소비자가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취약 소비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회사가 더 많은 정보를 보유하면서 정보 비대칭성이 심화할 수 있다”며 “장애인에게는 접근성을 높이고, 노령층에는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 안정성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 에이전트 등장으로 모든 개인정보를 연동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는데, 회사 차원에서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류정혜 과실연 AI 미래포럼 공동의장은 “기술 업계에서는 개인정보 안정성보다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히려 AI를 인류가 어떻게 안전하게 통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과 유럽은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해왔지만, 중국 기업이 얼굴인식 등 민감 데이터까지 활용하며 룰 브레이커로 등장한 이후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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