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문동주(22)의 별명은 '대전 왕자'다. 한화의 마지막 1차 지명 선수,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국가대표 1선발, 역대 KBO리그 국내 투수 최고 구속(시속 161.6㎞)을 찍은 파이어볼러. 류현진(38)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 강력한 에이스의 존재에 목말랐던 대전의 야구팬들은 문동주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미래를 꿈꿨다.

그런 문동주가 마침내 한화의 가을에 새 숨을 불어넣는 영웅으로 우뚝 섰다. 장소는 대전이 아닌 대구였지만, '왕자'를 넘어 가을의 '왕'으로 우뚝 선 문동주의 대관식을 열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한화는 2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PO·5전3선승제) 3차전에서 '불펜' 문동주의 4이닝 무실점 역투와 4번 타자 노시환의 역점 2점 홈런을 앞세워 5-4로 역전승했다. 안방 대전에서 열린 1·2차전을 1승 1패로 마친 뒤 대구로 온 한화는 이 승리로 2승 1패 우위를 점하면서 2006년 이후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까지 1승만 남겨뒀다. 문동주는 데일리 최우수선수(MVP)로 뽑혀 상금 100만원을 받게 됐다. 1차전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문동주는 2022년 데뷔 후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선발투수로 나섰다. 올 시즌에도 붙박이 4선발로 활약하면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11승)를 올렸다. 그러나 데뷔 4년 만의 첫 포스트시즌 등판은 불펜으로 데뷔했다. 1차전에서 에이스 코디 폰세가 6이닝 6실점(5자책점)으로 흔들린 가운데 한화가 8-6으로 역전하자 김경문 감독은 곧바로 문동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2이닝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그는 개인 최고 구속인 시속 161.6㎞를 던지면서 7년 만의 가을야구 첫 경기 승리를 지켜냈다.

이날도 한화는 '불펜' 문동주가 필요했다. 두 팀은 경기 중반부터 홈런 공방전을 벌였다. 한화가 2점을 앞서간 4회말, 삼성 김영웅이 홈런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4회말 1사 1·2루에서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한가운데로 몰리자 그대로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을 넘겨버렸다. 김영웅의 올해 포스트시즌 2호포이자 PO 첫 홈런이었다. 2사 후엔 올가을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깜짝 스타' 김태훈이 다시 류현진의 커브를 공략해 우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삼성의 리드는 오래 가지 않았다. 5회초 1사 후 손아섭과 루이스 리베라토의 연속 2루타로 1점을 만회했다. 한화가 3-4로 뒤진 5회초 2사 3루에서 타석에 선 4번 타자 노시환은 한가운데로 몰린 후라도의 초구 실투(커브)를 놓치지 않았다. 특유의 '눕기' 타법으로 힘껏 잡아당겨 타구를 왼쪽 담장 깊숙한 곳으로 넘겼다. 노시환의 올해 포스트시즌 2호 홈런이자 PO 2차전에 이은 2경기 연속포. 삼성 쪽으로 넘어갈 뻔했던 흐름을 곧바로 다시 끌어왔다.
한화는 5회말부터 류현진(4이닝 4실점)을 내리고 김범수를 투입해 불펜을 가동했다. 이어 김범수가 6회 선두타자 김영웅을 볼넷으로 내보내자 곧바로 불펜에서 몸을 풀던 문동주를 구원 투입했다.

문동주의 '쇼타임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나오자마자 이재현과 김태훈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7회말 2사 2·3루 위기에선 올해 50홈런을 친 최고 타자 르윈 디아즈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8회말 1사 2루에선 다시 김태훈과 강민호에게 연속 삼진을 잡아낸 뒤 두 팔을 벌리고 포효하며 더그아웃에서 기다리는 동료들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 9회말도 일사천리였다. 삼진-삼진-2루수 땅볼. 한화의 올가을 두 번째 승리가 또 다시 문동주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두 팀은 22일 같은 장소에서 PO 4차전을 치른다. 한화는 정우주, 삼성은 원태인을 각각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대구=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