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우리나라에 사모펀드(PEF)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째인 가운데, 사모펀드가 재계의 주요 실력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몇몇 초대형 인수합병(M&A) 거래 때만 잠시 모습을 드러내던 '은둔의 투자자'였다면 지금은 중공업, 생활용품 기업, 햄버거 프랜차이즈, 렌터카 업체 등을 쥐락펴락하며 사회 각계의 주목을 받는 '큰손'이 됐기 때문이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재계 사업 개편의 파트너 역할을 넘어 대기업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재벌 오너가(家)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M&A 주체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PEF는 자본시장의 핵심 구성원으로 M&A 시장에 돈이 돌게 만들고, 인수한 회사의 체질을 바꿔 업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기업을 인수해 다시 판다'는 운용 방식 탓에 투자 차익만을 노려 '약탈적' 경영을 한다는 비판도 나오면서 진통도 적잖다. PEF가 기업 미래는 무시하고 엑시트 전망만 따져 무분별한 M&A를 벌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PEF에 대한 이 같은 우려는 MBK가 지난해 말부터 한국앤컴퍼니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잇달아 참여하면서 더 커졌다. MBK가 최근 대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 변화를 추동하는 자본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재계에서 'PEF발 M&A 격랑'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PEF 입장에선 상생 경영을 내세우지만 신뢰를 얻기 어려운 점도 고민거리다. 기업 내부에서부터 '먹튀' 자본인 PEF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을 믿을 수 없고 회사 자산만 빼돌리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는 경우가 잦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올해 8월 한양증권을 인수키로 하자 이 회사 노조는 "성급한 부동산 매각과 고용 불안이 걱정된다. 건전한 자본에 회사를 매각하라"며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MBK는 홈플러스 점포를 대거 처분하고 슈퍼마켓 부문(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분할 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조 및 지역사회와 갈등을 겪고 있다.
PEF 운용사들이 폐쇄적 소수 정예 구조로 운영되는 데다, 보안이 중시되는 M&A 시장에서의 관행 탓에 투명성이 낮아 이런 불신 문제를 더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 청년일보=이창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