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에서 배우는 공존의 첫걸음, 배려

2025-02-25

우여곡절 많았던 겨울이 이제 서서히 봄을 향해 나아간다. ‘새들은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던데. 집을 고치든, 새로 짓든 지금이 가장 적합한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변화는 모든 것의 숙명이니까.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괴로움을 안긴다.

해가 바뀐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25년을 24년으로 잘못 써놓고 아차차! 하면서 고쳐 쓸 때가 있다. 신년이면 한두 번씩은 겪게 되는 낯익음과 낯섦에 대한 뇌의 인지부조화로 인한 가벼운 해프닝이다. 더구나 올해는 신정과 설이 한 달에 들어있어 더 그렇다.

인간과 대자연의 조화로운 공존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

경기 중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심

무안공항 참사의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연일 국태민안과 극락왕생 기도를 쉬지 않았던 터라 작은 미소조차도 조심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뜻밖의 손님이 절에 찾아왔다. 유독 건장해 보이는 두 명의 남성 불자. 그 어떤 이도 스스럼없이 찾아와 부처님께 기도하고 답답한 마음을 내려놓는 곳이 절이고, 그들을 맞이하는 게 나의 소임인지라 특별할 건 없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데, 지인의 소개만으로 먼 곳에서부터 찾아오니, 반가운 마음이 더할 수밖에.

그 먼 곳이란 다름 아닌 부탄이다. 불교의 나라 부탄! 우리에겐 지구촌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로 각인된 남아시아의 작은 나라다. 두 불자는 부탄에서 국가대표팀 농구 감독과 축구 코치를 맡고 있다고 했다. 분명 우리말을 쓰는 한국 사람인데, 마치 한국어를 잘하는 부탄인처럼 한없이 착하게만 느껴졌다. 맘씨 좋은 시골 아저씨처럼, 맑고 순수한 눈빛과 순박한 말투까지, 겸손함과 배려심 넘치는 화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내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문득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이었던 안영(晏?)이 말한 ‘귤화위지(橘化爲枳)’가 떠오른다(『안자춘추(晏子春秋)』). 회수 남쪽의 귤을 회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 사람 또한 사는 환경에 따라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요즘 말로 풀자면, 현지에 최적화되어 살아간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국땅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며, 애국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웃을 때가 아닌데, 차담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부탄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가치관에 대한 부분은 정말 흥미로웠다. 삶에 대한 행복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있었다.

나라 전체가 고산지대로 둘러싸인 험난한 산악 지형에 사는 부탄 사람들은 국교가 불교인 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여러 이유로 다른 문명과의 교류는 적은 편이다. 또 급속한 산업화의 물결을 타지 못하여 경제 성장도 뒤처진 나라다. 그 탓에 아시아에서는 빈국(貧國)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빈곤하지 않다. 그날 들은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축구 경기를 하면 몸싸움이 다반사인데도, 상대팀 선수가 걸려 넘어지면 심판의 휘슬과 상관없이 경기가 중단됩니다. 넘어진 상대 선수에게 달려가서 ‘괜찮냐, 많이 다치지 않았냐, 심하게 해서 미안하다’ 등 위로하며 부상 선수를 일으켜줍니다.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부딪치기도 하고 넘어지는 게 당연한데 말이죠. 처음엔 이해가 안 됐지만, 거기 계속 살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그들은 경기에서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닌 거죠.”

고개를 끄덕이며 농구 감독도 말을 거들었다. “농구 경기할 때도 그렇습니다. 농구는 실내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경기 중간에 한 선수가 벌레를 발견한 거예요. 우리 같으면 작은 벌레 한 마리니까 그냥 무시하고 뛸 텐데, 바로 경기가 중단됩니다. 벌레를 산 채로 경기장 밖으로 배웅해 주고 와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저런 감독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탄의 경기장 풍경을 그려보니 미소가 그려졌다. 경제지표와 행복지수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부(富)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물질만능 사회에선 어쩔 수 없다지만, 그것이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산업문명이 빠르게 진화하는 것이 싫다. 이제는 최첨단 과학의 결정체인 인공지능(AI)과의 공존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 물정 모르고 늘 뒤처져 있는 나 같은 출가자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두렵다. 그런데 아직도 부탄은 자연과의 공존을 우선으로 두고,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를 최고의 가치로 둔다니 참 멋지고 부럽다. 그러고 보니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는데, 아직 연이 닿지 않아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 꼭 가봐야지.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겨우내 마르지 않던 마음속 젖은 빨랫감들이 따사로운 자비의 햇살에 뽀송뽀송 말라가고 있었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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