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핀란드와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은 과거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인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제국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 정권이 성립했다. 신생 국가나 다름없던 소련은 전쟁을 지속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적국인 독일에게 핀란드와 발트 3국 영토를 내주고 1차대전의 수렁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듬해인 1918년 독일은 영국·프랑스·미국 등 연합국에 항복했다.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이른바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핀란드와 발트 3국은 모두 독립국이 되었다.

소련은 절치부심했다. ‘모든 인민이 평화롭게 골고루 잘사는 것이 목표’라는 공산주의 국가도 영토적 야심 앞에선 자유로울 수 없었다. 1939년 9월 마침내 기회가 왔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이웃나라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장 독일과의 싸움에 대비해야 하는 영국·프랑스 양국은 북유럽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이를 잘 아는 소련의 스탈린이 핀란드와 발트 3국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겉으로는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라’는 것이지만, 실은 주권 양도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스탈린은 2차대전 발발 직전 히틀러와 맺은 불가침 조약을 통해 ‘핀란드와 발트 3국은 소련 영향권’이란 양해도 이미 받아둔 상태였다.
국토가 비좁고 인구도 적은 발트 3국은 소련의 강압에 굴복했다. 곧바로 소련군의 진주가 시작됐고 세 나라는 대외적으로 ‘연방공화국’을 표방한 소련의 구성원이 되었다. 하지만 핀란드는 달랐다. 전쟁까지 결심하고 소련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1939년 11월 소련군이 핀란드 국경을 넘으며 이른바 ‘겨울전쟁’(Winter War)이 시작됐다. 두 나라의 국력 차이는 엄청났으나 핀란드는 의외로 오래 버텼다. 군 수뇌부가 이미 잘 짜놓은 작전 그리고 군인을 비롯한 시민들의 애국심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엄청난 병력과 물량을 투입하면서 전쟁을 계속했다. 결국 개전 4개월 만인 1940년 3월 국력이 사실상 소진된 핀란드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소련은 발트 3국처럼 핀란드를 복속시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강화 조약의 결과 핀란드는 영토의 약 10분의 1을 소련에 뺴앗기는 시련을 겪었지만 어쨌든 독립국으로 살아남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어떤 지도자가 전쟁을 시작하려고 할 때 그는 과연 이길 수 있는지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며 “(젤렌스키는) 자국보다 20배나 더 큰 상대방과 전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럼 우크라이나는 그냥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땅한가. 지금으로부터 85년 전 소련의 부당한 위협을 걷어차고 패배할 가능성이 큰 전쟁을 택한 핀란드의 결단을 트럼프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기지 못할 싸움은 하지도 말라’는 옛말이 있긴 하나,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결코 폄하되어선 안 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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