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개월간 같은 뉴스의 반복에 지쳐가던 중 가평에 사는 친구로부터 “꼭 와!”라는 청을 받았다. 늦봄 햇살 아래 평상에 걸터앉아 방금 따온 방울토마토를 집어 먹으며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담장 밖에서는 논물에 몸을 담근 개구리들이 크고 작은 울음소리로 여름을 부르고, 산 너머 뻐꾸기는 구슬픈 두 박자의 하소연을 한다.
울안 감나무 위로 치솟아 오르는 종달새의 명랑한 지저귐에 시선을 마당으로 돌린다. 마당에는 노란 물이 덜 빠진 병아리들이 작은 부리로 풀에 버무린 사료를 쪼기도 하고 목을 뒤로 젖혀 한 모금씩 물을 넘기기도 한다. 어미 닭은 여덟 마리나 되는 병아리를 챙기느라 부산하기만 하다. 머리에 긴 벼슬이 있는 수컷은 목을 빼고 마당 한 켠에서 노는 강아지를 신경 쓰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는 닭
고니·학에 비하면 대접 못 받아
서운해 말자, 내일은 새로운 날

마당에서 노는 닭들을 보면서 잠시 과거로 시간여행을 했다. 요즘이야 닭튀김이나 삼계탕을 사서 먹지만 1980년대까지 시골에서는 집에서 기른 닭을 택일해서 잡아 고아 먹었다.
그 시절 어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 구석에 나무기둥 몇 개를 세운 후, 장에서 사 온 마름모꼴 철사 망을 사방에 두르고 짚으로 지붕을 씌워 닭장을 만들었다. 닭장에는 닭들이 놀 수 있게 모래를 깔아 주고, 쉴 수 있도록 짚더미도 넣어주었다. 또 닭이 잘 수 있도록 긴 막대기를 걸쳐 놓았다. 그 막대기를 홰라고 불렀는데 홰는 닭이 자다가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도록 대나무보다는 표면이 거친 소나무를 썼다.
홰는 닭을 천적으로부터 지켜주는 데 꼭 필요했다. 해가 지고 닭이 잠들면 닭장 주변에는 밤이 오기를 기다린 족제비와 삵이 들이닥쳐 닭을 잡아먹곤 했다. 이런 천적들을 경계해 한쪽 눈을 뜨고 자는 닭도 날고기를 먹어야 사는 천적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인간도 닭고기 덕분에 만성적인 단백질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닭처럼 고기나 알을 얻기 위해 품종개량을 한 조류를 가금류(家禽類)라고 하는데 가금류로는 닭·오리·거위·칠면조와 메추리를 꼽는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의 고기는 적색육(赤色肉), 가금류의 고기는 백색육(白色肉)이라고 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종교적으로 금하기도 하지만 가금류에는 제한이 없다. 그래서 닭은 세계적으로 매년 600억 마리나 도축된다. 다음은 오리로 26억 마리다.
일찍이 한·중·일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를 새벽과 연결해 생각했다. 한반도의 서해안 김제에 살던 노인들은 중국 산둥반도 칭다오의 닭 울음소리를 듣고 일어났다고 농을 하곤 했다. 그리고 숨을 힘껏 들이켜 가래를 끌어 올린 후에 마당 저만치에 뱉으며 자신의 건강이 멀쩡하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 그들은 산둥반도 옌타이의 노인들이 귀만 먹지 않았다면 자신들의 가래 뱉는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얘기에서는 ‘닭이 울면 귀신은 떠난다’고 했다. 사실 닭의 뇌에는 송과체(松果體)라는 기관이 있는데 송과체가 빛을 감지하면 닭은 예민해져 울기 시작한다. 민주화를 앞장섰던 한 정치인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속담을 자주 사용했다. 새벽은 닭 울음소리로 오는 것은 아니지만 닭은 새벽이 되면 꼭 운다.
그런데 해가 떠서 동쪽 하늘이 붉어질 때까지 우는 닭도 있다. 동천홍(東天紅)이다. 관상용 닭인 동천홍은 긴 꼬리만큼 울음소리도 길다. 동천홍은 이름처럼 동쪽 하늘이 붉어질 때까지 울진 않지만 길게는 10초 가까이 운다. ‘동쪽 하늘을 밝힌다’라는 표현이 상서로워서인지 서울 시내에는 동천홍이라는 음식점의 상호가 가끔 눈에 띈다.
알고 보면 닭은 인간과 같이 살면서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학을 띄우기 위해 닭은 엑스트라가 되기도 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란 표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또 하늘을 나는 고니는 어쩐지 귀하고, 마당에서 노는 닭은 흔하니까 천하다는 의미의 귀곡천계(貴鵠賤鷄)라는 표현도 있다. 막상 귀하게 친 고니를 삶아보니 기름만 둥둥 뜨고 닭보다 맛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귀곡천계는 일상에서도 알게 모르게 사용된다. “그 집 아이들은 잘하는데 너희는 어째 그 모양이냐?”라는 꾸중에 “자기 자식 귀한지 모른다”는 아이들의 불평이나 “밖에 기부는 많이 하는데 직원들에게는 짜다”는 뒷담화도 마찬가지다. 영남 지방 풍속에 밝은 권은희 선생이 소개하는 ‘먼 곳에 있는 무당이 더 용하다’라는 민담도 같은 맥락이다.
직장에서 근무 평정 시기가 다가올 때 상관이 스펙 좋은 직원을 예뻐하는 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봐야 하는 직원은 마음이 오그라든다. 하지만 자기가 속한 곳에서 고니가 아닌 닭으로 취급받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자. 예수도 베들레헴에서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모두 희망을 갖자. 내일은 새로운 날이다.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