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경제는 현재 잠재성장률이 1~2%대로 하락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와 이를 위한 벤처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 또한 지난해 12월 65세를 넘긴 사람이 총인구의 20%(1000만 명)까지 늘어나, 고령화 시대 퇴직연금 운용의 효율화도 이슈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이들 이슈를 연결해 보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반대 의견부터 살펴보자. 퇴직연금은 수익보다 안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사람들은 손사래를 친다. 이유를 보면 우선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 자산이어서 무엇보다 ‘안정적 운용’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게 첫째 논리다. 벤처투자는 본질적으로 고위험 자산이기 때문에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특성상 실패 가능성이 높고 투자금 회수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투자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이유다.
‘5년 수익률’ 국민연금의 4분의 1
안정성 갖추되 수익성도 높여야
근로자 및 운용자에 선택권 줘야

둘째, 투명성 부족과 검증의 어려움이다. 벤처투자는 정보 비대칭의 기술과 비상장 기업 수익모델에 투자하는 구조여서 투명성이 부족하고 논리적·객관적 검증이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퇴직연금의 안전한 운용 원칙과 충돌한다는 우려다.
셋째, 퇴직연금은 수익률보다 무손실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퇴직연금 감독규정이 비상장 주식 투자를 금지하는 것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벤처투자 허용’ 또는 ‘적어도 벤처투자 선택권’은 줘야 한다는 의견도 강하다. 이들의 주장 이유는 첫째,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예컨대 2023년은 5.26%로 다소 호전됐지만, 지난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2.07%에 그친다. 2017~2021년의 5년간 수익률의 경우 국민연금은 연평균 7.63%, 퇴직연금은 그 4분의 1(1.94%)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 1000만원이 20년 후엔 500만원으로 반토막이고, 부동산가격 상승까지 포함하면 거의 3분의 1로 줄어든다. 구매력으로 보면 전혀 안전하지 않다.
둘째, 벤처투자의 수익률에 대한 평가다. 벤처펀드 기준 벤처투자의 성과는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과 달리, 벤처투자조합을 제도화한 1987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무려 연평균 8.7%였다. 이는 그동안 청산된 1107개 펀드를 전수 분석한 결과로, 특히 전체 펀드의 3분의 2가 연평균 15.7%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점에서 적절한 펀드 선택에 따라선 위험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창업 초기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 투자하는 한국벤처투자(주)의 모태펀드도 청산 펀드 277개를 기준으로 보면, 원금의 1.5배를 회수하고 연평균 9.0%의 수익을 실현했다. 같은 기간 국고채 금리의 약 2배에 해당할 정도로 높은 수익률이다.
특히 다른 연기금들의 벤처투자 성과는 훨씬 좋다. 연기금 벤처투자가 시작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연금의 벤처투자 수익률은 연 13.9%, 사학연금은 10.1%, 공무원 연금 9.2%였고, 과학기술공제회와 고용보험 기금은 각각 11.9%와 17.2%에 달했다. 이들 연기금의 자금력과 신용도가 좋아서 경쟁력 있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탈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수익률의 배경이었을 것이다.
셋째, 이론적 배경도 있다. 미국의 마코비츠 교수는 현대 포트폴리오이론에서 주식·채권 등 전통 자산뿐 아니라 벤처 등 대체투자를 포함한 분산투자로 동일한 위험 대비 기대 투자수익률을 올릴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이 이론은 1970년대 미국 퇴직금 제도 개혁과 자본시장 발전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넷째 국내 벤처산업은 벤처기업 대비 투자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투자 자금이 부족한 ‘매수자 우위 시장’인 점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투자 금액은 2023년 기준 0.26배로 미국(1.09%)보다 훨씬 낮고, 이스라엘(1.72%) 대비로는 거의 7분의 1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볼 때 퇴직연금의 벤처투자는 검토할 필요성이 커졌다. 손실 위험이 걱정되면 성과를 봐서 조금씩 투자를 늘리도록 하면 된다. 적어도 근로자 또는 운용자에게 벤처투자의 선택권은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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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