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민이 세금으로 떠안아야 할 '적자성 채무'가 내년에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인 728조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상환 가능하다고 분류하는 금융성 채무도 대응 자산이 사실상 부족한 데다,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의무지출이 앞으로 큰 폭으로 늘 수밖에 없어 미래 세대의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2000억원으로 느는데, 이 중 적자성 채무가 1029조5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924조8000억원이었던 적자성 채무는 내년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체 국가채무에서 적자성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도 72.7%로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적자성 채무는 흔히 ‘질이 나쁜 채무’로 분류된다. 정부는 국가채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눠 관리한다. 대응자산을 보유해 상환 여력이 있는 빚이 금융성 채무라면, 적자 국채 발행 등으로 조달해 결국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이 적자성 채무다. 쉽게 말해 정부가 세입만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발행하는 빚을 뜻한다.
정부는 내년에만 110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를 찍을 계획이다. 국채에는 매년 이자가 붙는다. 내년 국채 이자 부담만 36조4000억원에 달하고 2029년에는 연간 44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GDP 대비 비중은 1.3%로 선진국보다 낮지만, 매년 수십조원이 자동으로 국가 부채로 쌓이게 되는 것이다.
적자성 채무가 정부 발표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의 2024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금융성 채무로 분류한 359조8000억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대응 자산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국민주택채권의 대응 자산에 청약저축 납입 잔액(97조5000억원)을 포함해 과도하게 반영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외평환기금 채권(2023년 기준 200조1000억원)의 대응 자산으로 외환보유고를 설정한 것도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병권 국회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은 “청약저축 납입액은 가입자가 납입하고 다시 돌려받아야 할 금액인데 이를 국민주택채권 상환 재원으로 본다는 것은 무리이며, 외환 방어를 위한 외환보유고 역시 상환 재원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분류는 국가채무 상황을 왜곡해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대응 자산이 없는 금융성 채무를 보수적으로 재분류한다면, 적자성 채무는 이미 1000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총수입은 제자리인 반면 총지출만 계속 늘어나면서 적자성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로 기초연금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 한 번 도입하면 줄이기 어려운 현금성 지원도 내년 예산안에 대거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인구 감소 지역 중소기업 근로자 5만4000명에게 월 4만원을 지원하는 ‘천원의 아침밥’과 ‘직장인 든든한 한 끼’가 있다. 의무지출 성격인 아동수당 역시 올해 지급 연령이 7세에서 8세로 확대됐으며, 국정기획위원회 계획에 따르면 2029년까지 11세로 늘어난다. 여기에 더해 자발적으로 퇴사한 청년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등 의무지출을 더욱 키울 국정과제 등이 대거 예고돼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율을 대폭 인상하거나, 성장률이 크게 개선되거나, 현행 의무지출에 대한 근본적 구조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적자성 채무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이 세 가지 모두 현실적으로 요원해 보인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