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캄보디아 다음은 어디?

2025-10-23

캄보디아에서 한국 대학생을 살해한 범죄단 총책이 2023년 4월 서울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학원가 마약음료 사건의 공범이라는 국가정보원의 국회 보고는 혼란스럽다. 필로폰 음료를 청소년 13명에게 마시게 한 뒤 돈을 뜯으려 한 이 사건은 파문이 컸다. 경찰은 중국 공안의 협조로 지린성에서 주범 이모(28)씨를 잡아 송환했다. 이씨는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징역 2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마약음료 사건 공범이 캄보디아 사건의 총책이라니, 공범이 모두 몇이며 다들 어디에 있다는 얘기인가.

투자·부업 사기 계좌 정지 애원에

보이스피싱 아니라며 인출 방치

해외 범죄 조직에 손쉬운 먹잇감

이재명 대통령은 ‘비상한 대응’을 지시했다. 그러나 국제 범죄 피해자들은 정부의 능력도, 의지도 믿지 않는다. 마약음료 사건 재판에서 법원과 검찰은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규정했다. 보이스피싱의 섬뜩한 변모다. 이들 조직은 수사 당국도 유린한다.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했던 한국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주민 신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된 현지 조직원들이 아무런 처벌 없이 풀려난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선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제 발로 찾아온 로맨스 스캠 조직 총책을 그냥 돌려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피해자 증언을 종합하면 한국만큼 손쉬운 범죄 대상이 없다. 2년 전 주부를 타깃으로 하는 ‘부업 사기’ 피해가 확산했다. 물품을 사고 리뷰를 쓰면 보수를 준다고 현혹해 거액을 가로챘다. 채팅방에서 여러 명이 역할을 분담해 피해자를 속이는 수법은 검찰·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범죄의 판박이다.

그런데 거액을 송금한 피해자들이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사기범 계좌의 지급정지를 요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보이스피싱은 계좌를 정지하지만, 이 범죄는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했다. ‘목소리(보이스)’를 ‘톡’으로만 바꾸면 보호망이 무력화한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기존 개념정의만으로 현재 발생하는 모든 유형의 보이스피싱 범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박찬걸 ‘최근의 보이스피싱 범죄수법 변화에 따른 대응방안’). 캄보디아에서 벌인 로맨스 스캠은 거짓 연정(戀情)을 내세운 보이스피싱의 갈래다. 투자 사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피싱을 당해 당국에 계좌 정지를 요청하면 “보이스피싱이 아니라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범죄단은 중고생에게 마약을 먹일 정도로 극악해지는데 정부 당국은 “보이스피싱이라야” 계좌를 막는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절망은 피해자들을 뭉치게 했다. 카카오톡엔 피해자 채팅방이 속속 생긴다. 이들이 정보를 공유해 한국에 온 외국 유학생 계좌가 범행에 활용된 의혹 등을 찾아냈으나 소용이 없다. 380여 명이 가입한 부업 사기 피해자 모임 운영자 임모씨는 “우리가 파악한 사실을 알려주려 해도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모인 공간에선 2차 피해까지 발생한다. 피해자들은 검경 수사에 희망을 걸지만, 피해자 조사 한 번 받고 나면 그만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범죄 조직은 이런 간절함까지 노린다. 피해자 모임 운영진에게 검사라고 속여 추가로 수천만원을 뜯어내는 일이 벌어졌다.

해외 범죄 조직은 한국의 대표적인 구인 사이트와 물품 거래 사이트를 통해 선량한 구직자를 범죄 하수인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나 여기도 무방비다. 윤석열 정부 때 그나마 피해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한 주인공은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었다. 정권이 바뀐 지금은 그마저 사라졌다. 이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지시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보이스피싱 여부만 엄격히 따지는 한국의 수사·금융기관은 날로 진화하는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엔 만만한 상대다. 최근 여행상품을 빙자한 유사 보이스피싱 범죄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건 본거지가 어느 나라인지 아직 모른다. 이제 “보이스피싱이 아니고 여행 사기라 계좌 정지가 안 된대요”라며 울먹이는 소리가 전국에서 이어질 차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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