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영화는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와 닮아 있을 때, 과거와 현재가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하며 공감을 준다.
우민호 감독의 신작 '하얼빈'은 그런 점에서 강력한 힘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 안중근 장군과 독립투사들을 그린 이야기로,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혼란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민호 감독은 대한민국 사회 내부의 민낯을 비춘 영화 '내부자들'부터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영화 '남산의 부장들'까지, 과거의 사건으로부터 현재 우리 사회를 꿰뚫는 시선을 보여줘 왔다. 이번에는 1909년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하얼빈'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간의 치열한 추적과 의심을 그린 영화로 지금까지의 항일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영웅적 서사보다는 안중근과 주변 인물들의 고뇌와 두려움, 절망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의 인간적인 내면을 촘촘하게 엮어내면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는 그 순간까지 지루함 없이 끌고 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안중근 장군과 독립 투사들의 모습에서 현재를 발견할 수 있다. 주권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독립투사들이 비상계엄 사태를 발발시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국민들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극 중 이토 히로부미는 독립운동하는 조선인들을 "어리석은 왕과 탐욕스러운 유생들의 통치 아래 받은 것이 없지만,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가는 안중근의 모습 위로 흐르는 "불을 들고 어둠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은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해나갈 동료들의 모습을 예고하는데, 이 역시도 응원봉을 들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2024년을 살아가는 국민들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명량'은 세월호 참사로 리더 부재의 현실을 직면한 국민들에게 위로와 울림을 줬다. 당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대리만족과 위로의 상징으로 부각되었으며, 국민들은 역사 속에서 강인한 지도자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사회적 혼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적 비탄과 사회적 각성의 분위기는 '명량'의 성공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역사 영화가 단순한 과거 재현을 넘어 현재의 관객에게 깊은 공감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얼빈' 역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며 관객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을 보인다.
과거에는 영화가 현재의 상황과 닮아 있거나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발언을 자제하며 선을 긋는 경우가 많았으나 '하얼빈'은 과거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메시지를 과감히 드러내며 변화된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민호 감독은 "처음으로 이 나라를 위해서 조국을 위해서 헌신한 분들을 담은 영화를 하게 됐다. 안중근 장군의 책도 살펴보고, 독립투사들 자료도 살펴봤다"며 "안중근 장군 당시 나이가 30세였다, 대부분 20~30대 젊은 분들이 헌신할 수 있었던 게 무엇일까 찾아보고 싶었다"라며 "이 영화가 관객들께 위로와 힘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비록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지만, 반드시 이겨낼 거라고 믿고 자긍심을 느끼셨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배우들 역시 우민호 감독의 의견에 동의했다. 공부인 역으로 열연한 전여빈은 "빛을 되찾는다는 의미의 광복이라는 단어처럼 '하얼빈'에 함께했던 투사들은 뜻을 모아 엎어지더라도 나아간다. 지금 혼란한 시대를 겪고 있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도모하고 있는 국민들과 함께 '하얼빈'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길, 힘이 보태졌으면 한다"라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