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철제 삼태기’다. 곡물을 크기별로 나누거나 흙과 자갈을 분리할 때 이 철제 삼태기를 사용하고는 한다. 가로세로로 짜여 있는 철선 사이 구멍으로 물질을 통과시키면 필요한 것들만 한쪽으로 모이게 된다. 원하는 것을 단번에 모으려면 그 물질의 크기에 맞는 구멍을 가진 철제 삼태기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즉 철선 간격이라는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삼태기 체를 만들면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다.
통계를 만들 때도 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표준산업분류’다. 산업을 농림어업·광업·제조업 등 21개 대분류로 나누고 각 대분류 범주마다 중·소·세·세세분류를 둔다. 이는 국제표준분류를 기반으로 만든 것으로 이 체를 이용하면 각 산업의 하위 분야별로 각종 통계를 생산할 수 있다.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도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의 철제 삼태기만을 사용하면 일정 크기 이상의 돌멩이만 골라낼 수 있는 것처럼 표준분류 하나만으로는 급변하는 현황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세밀한 통계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표준분류보다 상세한 ‘맞춤형 체’가 필요하다.
통계청에서는 특정 산업의 국내 현황을 효과적으로 포집해내기 위해서 ‘특수분류’를 제정해왔다. 최초의 특수분류는 1991년 제정된 ‘에너지산업 특수분류’다. 표준산업분류의 서로 다른 대분류에서 에너지산업에 해당하는 세세분류 항목을 발췌해 만들었다. 예를 들면 광업 대분류 중에서는 ‘우라늄 및 토륨 광업’을, 제조업 중에서는 ‘원유 정제처리업’을 골라내 에너지 관련 산업으로 재구성하는 간단한 방식이다. 이로써 표준분류만으로는 작성하기 어려운 에너지산업을 위한 통계를 만들어 정책에 활용할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특수분류 제정 요청은 최근 출현한 신성장·융복합 산업 분야에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핵심 광물 재자원화, 로봇, 바이오헬스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지원하고 육성하고자 할 때 특수분류의 유용성이 주목받고 있다. 통계 작성뿐만 아니라 지원 대상 사업체 선별 등의 정책 활용 목적으로도 특수분류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에 고시한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산업 특수분류는 최신 맞춤형 체의 대표적인 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통계청이 함께 개발한 CCUS 산업 특수분류는 관련법에도 인용돼 관련 산업의 육성과 기업의 산업단지 입주 등을 지원하는 편리한 체로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5년마다 개정되는 표준분류만으로는 이러한 신산업을 시의적절하게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통계청은 특수분류 운용을 통해 이를 보완하고 있다.
우리 일상에 친숙한 산업 분야에서도 특수분류는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산업 특수분류’를 기반으로 작성한 통계를 복지 돌봄 서비스 고도화 등에 사용한다. 국가유산청도 국가유산 대중화를 위한 정책 마련 등을 위해 ‘국가유산산업 특수분류’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실에 적합한 기준과 분류를 시의적절하게 만들기 위해 통계청은 각 산업의 종사자, 관계부처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찾아가고 소통하고 연구하며 만들어가는 특수분류가 편리하고 유용한 맞춤형 체로서 기존 산업 활성화와 신성장 산업 육성에서 한몫해내기를 기대한다.